[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대통령의 말본새

입력 2017-05-11 10:52 수정 2017-05-1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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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약속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작은 일도 소통하고, 절대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겠다고! “사람이 먼저”라고 늘 강조해 온 그이기에 기대가 크다. 마음 한편으론 새 대통령의 앞이 온통 가시밭길이라 안쓰럽기 짝이 없다. 승리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인수위원회 기간마저도 그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선 첫날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대통령 당선증을 받아들고 곧바로 야 4당을 찾았고, 국회에서 약식 취임식을 한 이후엔 신임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등을 발표했다. 특히 취임사를 통해 현 시국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국민 통합, 안보 위기, 북핵 문제 등을 빠짐없이 챙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대통령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역사의 기록이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의 특이한 말버릇은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투리로 인한 말실수가 잦았다. ‘학실히(확실히)’ ‘씰데(쓸데)없는 소리’ ‘강간(관광)산업’ ‘이대한(위대한) 국민 여러분’ 등은 개그의 소재로 등장할 정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쉬운 말 쓰기의 천재라고 할 만큼 논리정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서량이 많은 만큼 말을 잘했지만, 격정적인 연설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은 ‘번역기’를 돌려야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비문(非文)투성이였다. “그건… 그래서… 그래갖고… 그래서… 또….”

대통령이 반드시 달변가(達辯家)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말은 생각의 표출이고, 생각은 결국 정책으로 이어지므로 대통령은 표현력이 좋아야 한다. 말본새가 중요한 이유이다. 말본새는 말을 하는 태도나 모양새를 뜻한다. [말뽄새]로 발음돼 일본어 잔재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순우리말이다. 말본, 말버릇과 같은 의미로, ‘말본새가 거칠다’처럼 활용된다.

내친김에 말과 관련된 표현 중에 ‘입바르다’와 ‘입빠르다’의 차이도 알아보자. 둘 다 소리가 ‘입빠르다’로 같아 헷갈리는 말이다. ‘입바르다’는 ‘바른말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는 뜻으로, ‘입이 도끼날 같다’와 동의어이다. ‘입바른 소리’ ‘입바른 말’ 등으로 활용된다. 마음에도 없이 겉치레로 하는 말인 ‘입에 발린 소리’와 구분하기 힘들다는 이들이 많은데, 뜻이 완전히 다르므로 주의해야 한다.

반면 ‘입빠르다’는 ‘입+빠르다’ 형태의 형용사이다. ‘남에게서 들은 말이나 자신의 생각을 참을성 없이 지껄이는 버릇이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입빠른 사람’은 입이 가벼워 남의 약점 등을 함부로 말하는 경솔한 사람을 지칭한다. 상대의 미소를 자아내는 말본새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유머가 없으면 아예 정치인을 꿈꿀 생각도 마라.” 미국과 영국에서 널리 통용되는 ‘유머의 정치학’이다. 정치인이 하는 험담과 막말은 듣는 이를 피곤케 한다. 또한 정치인이 하는 거짓말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신세를 망친 정치인이 여럿인 까닭이다. 말본새는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 유머는커녕 거짓말만 내뱉던 우매한 대통령을 보내고, 새로운 대통령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께 바란다. 논리정연한 대화와 더불어 가끔은 유머와 해학으로 팍팍한 현실에 즐거움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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