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09. 선정태후(宣靖太后)

입력 2017-05-1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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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왕비 올라 시련 속에서도 품위 지켜

선정태후(宣靖太后·?~1222) 김씨는 고려 제20대 왕인 신종(1144~1204)의 왕비이다. 아버지는 문종의 손자인 강릉공(江陵公) 왕온(王溫)으로, 신종이 즉위하기 전 평량공(平凉公)으로 있을 때에 혼인하였다. 신종은 인종과 공예태후(恭睿太后)의 다섯째 아들로, 인종 사후 큰 형인 의종이 왕위에 올랐고, 무신란으로 의종이 폐위되자 셋째 형(명종)이 즉위하였다. 1197년(명종 27)에 최충헌(崔忠獻)이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즉위시켰다.

즉 선정태후는 애초에 태자비로 간택된 것이 아니고, 그저 ‘왕자의 부인’이었을 뿐인데,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 변동에 의해 왕비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선정태후의 큰언니는 의종비 장경왕후(莊敬王后), 둘째 언니는 명종비 광정태후(光靖太后)로, 세 자매가 연이어 왕비가 되었다는 점이다.

즉위 당시 신종의 나이는 54세였고, 그녀 역시 비슷하거나 약간 연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종은 즉위하자 바로 그녀를 원비(元妃)로 책립한 데 이어 1200년에는 궁주(宮主)로 책봉하였다. 책봉문에서는 ‘(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20년간 그녀가 아내의 도리를 잘 지켰으며, 즉위한 뒤에는 왕실의 사업에 힘을 다하여 국정을 돕고 있다’고 책봉 이유를 들고 있다.

태후는 희종(熙宗)과 양양공(襄陽公) 왕서(王恕), 효회공주(孝懷公主), 경녕궁주(敬寧宮主)를 낳았다. 아들도 둘이나 있고, 맏아들은 1200년 태자 책봉까지 받아 얼핏 그녀의 삶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신종은 최충헌이 임명한 임금으로 실권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1204년(신종 7)에 병이 깊어지자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곧 세상을 떠났다.

아들 희종이 즉위하자 그녀는 왕태후가 되었다. 태후의 부(府)를 경흥부(慶興府), 궁전을 장추전(長秋殿)이라고 했으며, 얼마 뒤 응경부(膺慶府)와 수복전(綏福殿)으로 각각 이름을 고쳤다. 희종 대에도 최충헌의 위세는 여전하였고, 왕권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1211년에 희종은 몇몇 신료들과 최충헌을 죽이려 도모하였다. 그러나 거사는 실패했고, 희종은 폐위 당해 강화도로 쫓겨났다. 그리고는 최충헌에 의해 먼저 폐위되어 강화도에 가 있던 명종의 태자가 강종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태후는 많은 고초를 겪은 듯하다. ‘고려사’에는 태후가 “최충헌이 왕을 폐립하였을 때 갖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었으나 오직 근신하며 스스로 지조를 지켰다”고 되어 있다. 또 그녀가 천성적으로 곧고 밝은 품성을 가지고 있으며, 유순하고 고요한 행동은 스승의 교훈이 필요 없었고, 어려서부터 여공(女功·길쌈)에 힘을 썼다는 등 품성과 덕에 대한 칭찬이 많다. 태후는 1222년 사망했다. 능을 진릉(眞陵), 시호를 선정태후(宣靖太后)라 하고, 뒤에 신헌(信獻)이라는 시호를 추가하였다. 그녀는 시련 속에서도 왕비 및 태후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은 여성이었다 하겠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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