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올 들어 최고 수준의 황사가 덮쳤지만, 19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투표가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받으며 갖가지 이색적인 모습을 쏟아냈다.
우선 최근 며칠 동안 화마(火魔)와 싸우며 재산까지 잃은 국민들이 투표에 나서 안타까움을 샀다. 강릉시 성산면 제1 투표소에는 9일 산불로 집이 전소한 이재민 김순태(81·강릉시 성산면 관음2리)·강순옥(79) 씨 부부가 찾았다. 투표 종사원들은 몸이 불편한데도 투표소를 찾은 강 씨를 끌어안고 보듬으며 격려했다. 김 씨의 집은 산불 첫날 전소해 부부가 강릉 시내 아들 집에서 지내고 있다.
김 씨는 “집이 다 타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 엄두를 못 냈지만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백령도와 연평도 등 최북단 서해5도 주민들도 오전 일찍부터 미래 지도자를 뽑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인천시 옹진군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5개 유인도 등 100여 개 섬으로만 이뤄진 옹진군의 투표소는 덕적도 6곳, 백령도 4곳, 연평도 2곳 등 총 25곳에 마련됐다.
노구의 몸을 이끌고 투표에 나서기도 했다. 울산 중구 병영1동 제1 투표소에는 백발의 김소윤 할머니가 투표했다. 김 할머니는 1907년생, 올해 110세로 울산에서 최고령 유권자다. 김 할머니는 투표 후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며 “새 대통령은 백성 모두를 품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터민과 다문화 가정도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주권 행사에 나섰다. 이번에 두 번째로 대선 투표에 나선 새터민 한은서(여·30) 씨는 “TV토론을 보며 북한에 대해 좌지우지 당할 것 같은 후보는 뽑지 않기로 했다”며 “협상만을 내세우고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만을 주장하는 후보도 싫다. 우리의 배짱대로 나가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6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귀화한 김지원(여·36) 씨는 3번째 대선을 맞았다. 김 씨는 이번 대선에서 다문화 정책을 배려하는 눈에 띄는 정책이 많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다문화 이주민들에 대한 교육이나 취업 등에 대한 지원과 연계가 아직 부족한데, 이번 대선에는 이런 점들에 대한 배려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색 투표소들도 눈길을 끌었다. 경남 사천에서는 풋마늘 선별장이 대통령 선거 투표소로 변신했다. 이 투표소는 사천시선거관리위원회가 남양동 노례마을에 차린 ‘남양동 제2투표소’다. 이곳은 사천농협에서 관리하는 창고로, 풋마늘이 나는 시기면 선별장으로 사용된다.
양천구 선거관리위원회는 태권도장에 투표소를 마련했다. 서울 양천구 태랑태권도장에는 ‘목2동 제4투표소’가 마련됐다. 이번 대선에서는 서울에서만 웨딩홀 13곳, 주차장 7곳이 투표소로 활용됐다.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는 한 카페가 투표소로 활용돼 눈길을 끌었다.
새로운 투표 문화로 떠오른 인증샷도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물들였다. 선거법 개정으로 엄지 척, V(브이) 자, 오케이 사인 등 손가락으로 지지하는 후보의 기호를 만들어 보이는 사진도 적지 않았다. 일부 유권자는 기표도장을 팔목에 여러 차례 찍어 세월호 리본 모양을 만들거나, 후보의 이색 모습을 흉내내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