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알바 하느라 촛불 집회도 못 가고 일하는데 사장님은 야근수당도 안 주시고, 이런 제가 시민이 될 수 있을까요?”
겨우내 타오른 촛불이 민주주의를 다시 살렸다. 광화문과 도심 상가엔 백만 손님이 몰려들었다. 대박 난 점포마다 ‘시민 손님’을 맞이하는 ‘청년 알바’들은 비명을 질렀다. 축제가 끝나고, “알바가 시민이 될 수 있나요?”라는 청년의 질문이 남았다.
청년들은 또 묻는다. “야당이 집권하면 세상이 바뀔까요?” “우리의 시대는 올까요?” 쏟아지는 질문에 은수미가 답한다.
여러분의 시대는 온다= 이 책은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뒤 ‘전 의원’이 된 은수미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청년들과 만나고 청년들의 질문에 응답하며 씌어졌다.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은 나라 전체가 거대한 하청 사회로 바뀌었다. 불안한 삶, 불안한 직장, 불안한 미래. 우리 사회는 정규직이라 불리는 정착민의 삶에서 비정규직, 하청, 파견, 알바로 불리는 유목민의 삶으로 빠르게 변화했다.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끊겼고 미래를 향해 가는 열차도 없다. 폐쇄된 역에서 오지 않는 열차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철로를 따라 걷긴 하는데 끝을 알 수 없다.
우리들에게서 희망이 사라져버린 건 언제일까? IMF도, 그 이후의 양극화나 불평등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인 걸까? 시민이 주인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우리 곁에서 희망이 사라진 데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그 이전 민주 정부의 10년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업 경쟁력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아웃소싱이라는 대세가 만들어졌고 파견과 도급이 대세가 되었다. 정녕 이러려고 그 많은 사람이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건가. 비정규직에게 87 민주화가 어떤 의미인지 질문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의 기억을 되살리지만, 2017년의 청년은 1987년의 청년과 다르다. 익명으로 저항했던 민주화 세대와 달리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대의 과제 앞에 선 청년 세대에게서 은수미는 희망을 찾아낸다.
시민이 사라진 하청 사회= 그러나 희망은 아직 여린 싹이다. 노동하는 인간인 동시에 자유로운 인간으로 존재해야 시민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하청 사회는 자유로운 인간으로부터 노동하는 인간을 분리해낸다. 주인이어야 할 시민이 스스로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을 박탈당하는, 선거라는 형식적 절차는 존재하지만 내용은 점점 후퇴하는 포스트 민주주의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세상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만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시작해볼 수 있는 틈새와 여지가 생길 뿐이다. 시민은 충분히 싸웠다. 이제 정치가 싸워야 한다. 촛불에 진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은수미는 정치가 대단하고 거창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종이에 쓰인 글자에 불과한 헌법 정신을 삶의 규칙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말한다. 광장의 촛불을 일상에서 밝힐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모이고, 노조를 만들어 행동하고, 작은 독서회에서 토론하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시민의 정치가 제도 정치와 결합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을 만드는 국민기본선=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일터와 강의실, 광장 등에서 자기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을 우리는 시민이라 부른다. 자유와 정의와 평등과 인권, 이것들은 사람이 시민으로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먹고사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은 시민으로서 생각하고 참여할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말해 노예나 동물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이유로 이미 헌법에서는 최소한의 국민기본선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1일 8시간 1주 5일만 일하고,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최저임금은 넘겨서 받고, 일하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최저임금의 80퍼센트를 평균 6개월 정도 받고,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이 열 배쯤 오르고,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것. 이런 것들은 입법 통과 없이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다. 여기에 주거, 교육,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을 결합시켜서 국민기본선의 10가지 기준을 설정하고 집행하면 알바가 시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부모 세대보다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 세대에게 보내는 민주화 세대의 사과와 위로로 읽히기도 한다. 가시밭길을 헤치며 살아온 ‘선배’ 은수미의 응원에 힘입어 함께 희망을 마중하러 가보자.
꿈이 ‘정규직’인 불평등 사회에서 우리의 시대는 오는가. 저 높은 벽을 부수고 자유와 평등의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가. 이렇게 묻다 잠든 피곤한 어깨들을 토닥이며 자장가처럼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끝이 날 것이다. “기득권은 그냥 무너지지 않습니다. 기득권은 빼앗는 것이며 쟁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11p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