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미국의 8살짜리 흑인 소녀 린다 브라운은 가까운 곳에 있는 공립학교 입학을 거절당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린다의 아버지는 소송을 냈고, 4년 뒤 미 연방대법원은 승소 판결을 통해 교육에서의 인종차별을 금지했다. 역사적인 ‘브라운 판결(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이다. 지금 와서 보면 당연한 판결이지만, 당시 여론조사를 했다면 흑인과 백인이 같이 학교를 다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판결로 인해 차별이 철폐되기까지 반대 여론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영화 ‘히든 피겨스’도 이 내용을 다뤘다.
이선애 헌법재판관이 지난달 30일 취임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나 차별금지법 제정 등 주요 인권 문제에 관해 “국민들의 뜻이 중요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청문회를 일단 넘겨야 하는 상황에서 나왔겠지만, 이 발언은 적절치 않다. 답변을 회피해서가 아니라, 인권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국민 여론을 감안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의 여론을 반영하는 건 대통령(행정부)과 의회가 한다.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을 선거를 통해 임명하지 않는 건 다수의견으로부터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선출된 권력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의 효력을 헌재가 없앨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헌재의 가치는 오히려 여론으로부터 벗어난 결정을 내릴 때 증명된다. 소수자가 기댈 종착지는 결국 사법권력이다.
국회는 인사청문회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후보자에 대해 “재판관으로서 인권 침해, 사회적 약자 보호에 미흡하고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여성으로서는 세 번째로 헌법재판관 임기를 시작했다. 단순히 고위공직자로서 임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여론으로부터 인권을 지키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