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구~ 저걸 어떡해.” 같은 날 오후 내 페이스북에 올라온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로버트 켈리 교수의 방송사고 영상을 보면서 나온 말이다. 켈리 교수는 영국 BBC와 탄핵 관련 화상 인터뷰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와 보행기를 탄 아들이 들이닥치고 부인이 다급하게 들어와 아이들을 낚아채듯 데리고 나간다. 전 세계 언론들을 타고 ‘웃긴 동영상’ ‘사랑스러운 동영상’으로 퍼졌고, 켈리 교수 가족은 별안간 스타가 됐다.
이정미 전 재판관의 ‘헤어롤 출근’·켈리 교수의 ‘방송사고’ 해프닝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차대한 와중에 입소문을 탄 훈훈한 화제들이다. 위엄 있는 전문가들의 실수라는 점 외에도 이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전 재판관은 헌법재판관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일하는 엄마’,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은 어느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2010년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을 때 중학생 자녀들 때문에 판사직을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아이들을 돌보고, 일감을 싸 들고 다니느라 쪽잠 신세로 지냈다.
볼 때마다 매번 웃음이 터지는 켈리 교수의 동영상이지만, 많은 이들은 거기서 ‘일하는 아빠’의 고충을 읽어냈다. 일부 해외 매체들은 ‘집에서 일하는 부모들의 악몽이 벌어졌다’, ‘BBC 인터뷰 아빠의 고충에 공감합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BBC 페이스북의 이 영상에 달린 6만여 개의 댓글엔 비슷한 상황을 토로하는 내용이 잔뜩 있다. 집에서 회사 고객과 영상회의를 하는 도중 아이가 불쑥 끼어들었다든가, 전화로 부사장과 일 얘기를 하는데 아들과 강아지가 방해했다든가 하는 얘기들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기사에서 “켈리 교수, 당신은 2017년을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재판관과 교수라는 전문적인 직업 뒤 ‘생활인’으로서의 표정, 그 생활인의 모습에서 ‘민주주의의 승리’와 ‘생활 속의 민주주의’가 오버랩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민주주의 흐름과 옥죄는 삶을 풀어줄 일상의 민주주의가 만개할 그날은 언제가 될지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켈리 교수는 탄핵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10년을 살았는데 오늘이 그중에서 최고의 날일 겁니다. 탄핵 절차 전체를 끝까지 마무리한 민주주의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이걸 폭력도, 큰 혼란도 없이 해냈습니다. 전 이걸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민주주의의 승리 한편에 일상 속에 파고든 비민주적인 벽을 부수어야 할 험난한 길은 여전하다. ‘헬조선’에서 살아가기란 왜 이리 힘이 드는지에 대해서이다. ‘대한민국 워킹맘은 왜 이렇게 고단하게 살아야 하는지’, ‘아등바등 버는데도 왜 이렇게 돈은 안 모이는지’, ‘우리 아이들은 언제까지 경쟁을 위한 교육에 얽매여야 하는지’, ‘절망하는 청춘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등. 생활 속의 민주주의가 우리 삶의 형태를 바꿔줄 날은 언제쯤인지 하는 물음표가 남는다.
거리와 광장에서 부르짖었던 목소리는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어져야 한다. 행복한 생활인으로 가는 길은 멀고 지루하겠지만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공정함과 포용, 상호 책임성 같은 민주적 가치들이 스며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살아 있는 민주주의, 더 많은 민주주의가 일하는 엄마와 아빠,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그날은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