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대통령 말씀자료'에서 삼성 합병을 다뤘다는 증언이 나왔다. 청와대에서 재벌 총수 독대 면담에 대비해 기업에 연락해 미리 현안을 파악한 뒤 말씀자료를 작성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는 점도 알려졌다.
방기선(52)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은 20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15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이날 증언에 따르면 경제수석실은 2015년 7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을 면담하는 데 대비해 말씀자료를 만들었다. 여기는 '삼성그룹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이므로 지배구조가 조속히 안정돼 삼성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미래를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거나 '기업 이해도가 높은 이 정부 임기 내에 승계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방 전 행정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개별 면담 자료를 준비하지 않았다, 다만 (독대가 아닌) 큰 대규모 회의에는 따로 준비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료는 안종범(58) 당시 경제수석의 지시로 작성됐다. 경제수석실에서 직접 기업에게 규격화된 양식의 서류를 보내면 기업이 애로사항 등 현안을 적어 회신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방 전 행정관은 삼성 말씀자료의 경우 본인이 직접 정리하지는 않았고, 경제수석실 윤모 행정관이 인터넷 등을 토대로 수집한 자료를 더해 작성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윤 행정관은 경제수석실에서 작성한 ‘문화/체육분야 비영리 재단법인 설립방안’ 문건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안 전 수석이 문화재단을 만드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해서 작성된 서류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미소금융재단’이나 ‘삼성장학재단’을 참조해 설립 아이디어를 냈다고 설명했다. 진술을 들은 서기석(64·사법연수원 11기) 재판관은 “재단법인은 기업이 만드는 게 통상적이고, (출연금을) 모아 만드는 경우는 잘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역대 다른 정권에서도 정부 권유로 재단이 만들어진 경우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돈을 낸 기업이 하지 미르·K스포츠 재단처럼 기업들이 돈만 내고 운영은 국가가 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는 지적이다. 윤 행정관도 이 지적에 대해 “그런 것 같다”며 수긍했다.
이날 오후에는 김기춘(72)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헌재는 직권으로 증인 채택을 취소하고 22일 마지막 증인신문을 하기로 했다. 안 전 수석과 최순실(61) 씨가 증언하기로 돼 있지만, 안 전 수석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상태다. 헌재는 24일 최종 변론을 마무리 한 뒤 다음달 초 선고 기일을 잡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