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우려를 불식시키고 세계 최대 자동차 전장기업인 하만 인수에 성공했다. 이와 함께 미국 전장부품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신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차기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 출시 일정도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오너 부재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신규 및 기존 사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대형 인수·합병(M&A) 등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에서는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코네티컷주 스탬퍼드시에서 열린 하만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주 67%의 동의를 얻어 인수안이 통과됐다. 인수 가액은 80억 달러(약 9조2000억 원)로 국내 기업의 해외 인수 사상 최대 규모다.
일부 하만 소액주주가 인수 가격이 저평가됐다며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지만 절반 이상 주주가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수를 앞두고 불거진 악재에도 대부분 하만 주주들은 삼성의 인수로 인한 이득이 더 크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작업은 앞으로 미국·유럽·중국 등 하만이 진출해 있는 주요 시장에서 반독점 규제 당국 승인 절차를 거쳐 늦어도 3분기까지는 마무리될 전망이다. 하만은 인수 이후 상장이 폐지되고 삼성전자 미국 법인의 100% 자회사로 운영된다.
또 최근 삼성촉진펀드(Samsung Catalyst Fund)는 폭스콘, 로버트보쉬 벤처캐피털 등과 함께 미국 자율주행자동차용 라이더(Lidar) 업체 테트라뷰에 1000만 달러(약 114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테트라뷰가 주력하고 있는 라이더는 레이저 광선을 이용해 주변 환경을 3D데이터로 인식할 수 있는 부품이자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 부품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수요가 증가해 2020년에는 자율주행 차량용 라이더의 연간 시장 규모가 100억 달러(약 11조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현재 마무리되고 있는 M&A와 투자는 모두 지난해부터 이 부회장의 지휘 아래 면밀하게 추진해왔던 사안들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미국으로 직접 건너가 하만 M&A 협상을 마무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구속되면서 경영일선에서 이탈하게 됨에 따라, 신성장동력을 위한 삼성의 대규모 신규 투자는 당분간 보기 힘들 전망이다. 지난해 말부터 삼성은 신규 M&A 추진이나 올해 투자 등의 경영계획 수립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 나오고 있는 성과는 최소 1년 전에 계획이 수립된 것들의 결과물”이라며 “현재 삼성이 겪고 있는 경영 공백의 여파는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현실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문경영인은 단기적인 성과를 중요시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만큼, 절대로 훗날을 위해 당장 1~2년의 실적을 희생하는 결단을 내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총수 공백 사태 속에서는 5년, 10년 미래를 내다보고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결단은 내리기 힘들다는 지적인 셈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 역시 “하만의 인수가 절대로 끝이 아니다. 전장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연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추가적 M&A가 필요하다”면서 “최종 결정권을 가진 이 부회장의 공백에 따른 파장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