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 없는 민족은 얼굴이 없는 것과 같다. 문화재는 바로 그 민족 그 국민의 얼굴이며 마음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1910~1987)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선친의 사랑방에 놓여 있던 제주병(제사용 술을 담는 병)을 보며 민족 문화유산 지키기에 관심을 뒀다. 특히 연꽃무늬가 새겨진 표주박 모양의 청자 주전자인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국보 제133호)를 유달리 아꼈다.
이 선대회장은 고려의 세도가 최항의 무덤에서 발굴되어 일본으로 밀반출된 이 도자기를 오사카시립박물관에서 시행한 경매에서 3500만 원에 사들였다. 당시 이 액수는 지금 돈으로 1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9일 자유경제원이 서울 마포 본원 리버티홀에서 개최한 ‘예술을 사랑한 기업인 이병철: 기업이 있는 곳에 예술이 꽃핀다’ 세미나에서는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불법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이 선대회장의 노력이 소개됐다.
이 선대회장은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뿐만 아니라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와 ‘지장도’(보물 784호)를 찾아오기 위해서도 애썼다. 이 회장이 1979년 일본에서 되사온 ‘아미타여래도’는 일제 강점기 때 밀반출돼 야마도 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것이다.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아 국보 218호로 지정됐다.
이렇게 수집한 문화재는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1982년 4월 개관한 호암미술관은 이 선대회장이 평생 수집한 고미술품 1200여 점을 바탕으로 설립되어, 지금은 1만5000여 점에 이르는 국내외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