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페인(1737.1.29~1809.6.8)의 책 ‘상식’이 출간되자 미 대륙은 들끓기 시작했다. 페인은 ‘상식’에서 “영국 정체는 군주 전제정과 귀족 전제정, 그리고 이를 얄팍하게 덮고 있는 공화정의 복합이다. 결국 특권층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평등하다는 상식에 어긋난다. 영국 왕실에서 완벽하게 독립적인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당시 사람들은 책의 제목처럼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인, 법조인 등 상류층은 군주제와 공화제를 섞은 영국의 정체를 최상의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미국인 전체로도 독립하자는 의견이 20%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는 법이다. 페인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고 나갔고, 결국 그들은 그의 논리를 받아들인다. 페인의 주장은 미국 독립혁명의 상징인 ‘독립선언서’의 바탕이 된다.
페인은 프랑스 혁명에도 뛰어든다. 1787년 프랑스로 가 혁명을 목격한 그는 1791년 ‘인권’ 1권을 쓰고 이듬해 런던에서 2권을 썼다. 하지만 반란 선동이라는 죄명을 쓰게 되어 프랑스로 피신해 국민공회 의원에 선출된다. 그는 군주제 철폐에 환호를 보냈지만, 국왕 루이 16세는 살려주자고 주장했다. 로베스피에르 등 급진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자 페인은 1793년 12월 투옥됐고, 이듬해 로베스피에르의 실각과 함께 풀려났다.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그는 프랑스 국민공회에서 혁명의 완성을 위해 노력한다.
1802년 9월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는 곧 미국을 위한 자신의 노력은 모두 잊히고, 새로 기득권층이 된 이들에게 이단자로 취급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페인은 술을 마시면서 씁쓸함을 달래다가 1809년 홀로 생을 마감한다.
김대환 편집위원 daehoan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