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장기 호황기인 ‘슈퍼 사이클’에 진입한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 반도체가 ‘정치 리스크’라는 돌발 변수를 만났다.
반도체는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요한 대표적 산업이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앞서 투자하지 않으면, 미세공정 경쟁과 수요 대비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대규모 투자 및 인수ㆍ합병(M&A) 등에 속도를 내야 하는 시점이다.
문제는 두 회사의 수장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특별검사팀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 때문에 ‘정치 리스크’가 향후 한국 반도체 산업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나온다.
18일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장치 산업은 과감한 결정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 등의 공세가 본격화되기 전에 속도전으로 시장을 방어해야 하는데, 오너의 신변에 변화가 온다면 추진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은 주요 투자 결정을 진두지휘하며 공격 경영을 전개해왔다. 지난해 11월 삼성은 시스템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 10억 달러(약 1조142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선언했다. 이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다녀온 직후였다. 최태원 회장 역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달아 내놓는 등 공격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장기 낸드플래시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씨게이트와 합작법인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SK 수뇌부의 공백이 현실화하면 장기적으로 우리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경쟁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이 정치 리스크에 시달리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반도체 설비 투자에 75조 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투자 금액은 지난해 삼성과 SK의 몇 배 규모다. 여기에 국비를 지원해 반도체 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일본 도시바도 시가현 요카이치에 8조 원을 투자하며 3D 낸드플래시 설비를 대대적으로 증설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