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가을, 대한민국 직장인들을 흔들었던 드라마 ‘미생’을 간만에 보았다. 계약직 인턴기자로 정규직 전환 시험을 앞두고 있던 그때 기억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장그래, 안영이에 빙의해서 하루하루 고된 마음을 달래던 때였다. 술자리에서 선배가 건네는 ‘우리’라는 말이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감동적이던 때다.
드라마가 한창 물이 오르던 방영 중반쯤 내부고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 과장을 비롯한 영업3팀은 같은 팀 멤버였던 박 과장이 해외에서 자신 명의의 유령회사를 만들고 거래한 사실을 밝혀냈다. 박 과장은 회사에서 쫓겨나고 영업3팀은 사장에게 직접 두둑한 사례금이 담긴 봉투를 받았다. 이름처럼 7년간 오 과장으로 불리던 오상식은 드디어 오 차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칸막이 너머 시선은 따가웠다. 더 조용히 처리할 순 없었는지, 동료를 버리고 이익을 취한 건 아닌지, 고발자 너희는 얼마나 깨끗하냐며 사람들은 소리 없이 따져 물었다.
드라마에서 오 차장은 박 과장 고발과 관련해 ‘은밀한 따돌림’을 당하는 데서 그쳤다. 그러나 또 한 건의 내부고발 사건과 얽히면서 결국엔 원인터내셔널을 떠나야 했다.
현실은 더 가혹하다. LG전자 근무 당시 회사와 하청업체 간 비리를 고발한 정국정 씨는 15년이 넘게 복직 소송을 벌였지만 결국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3일 불공정거래 신고자에게 역대 최대 규모의 포상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시세조종 사건 제보자에게 지급된 5920만 원이다. 크다면 큰 금액이지만 중견 직장인의 1년 연봉에 지나지 않는다. 포상금액과 건수가 매년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고작 5건에 대해 평균 2415만 원이 지급됐을 뿐이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행태가 시세조종에서 미공개정보 이용 사건으로 옮겨가는 현실을 고려하면 “제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금융당국의 외침은 더 허망하게 들린다. 시세조종 혐의는 회사의 내부자가 아니어도 발견할 수 있겠지만 미공개정보 이용 제보는 일터를 버릴 각오를 할 누군가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대규모 계약 파기 의혹은 공시가 있기 두 달 전인 7월부터 메신저 등을 통해 내부 직원들 사이에 퍼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시 이틀 전에는 계약 파기를 확신한 일부 직원이 전화와 사내메신저 등으로 정보를 퍼 날랐다. 이를 금융당국에 제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작 5920만 원을 받고 ‘그 일’을 해낼 이가 몇이나 있을까. 올바른 ‘그 일’을 해내고도 받을 따가운 시선을 견딜 이는 또 얼마나 될까. 한국사회에서 내부고발은 아직 금전적 보상은커녕 겨우 이 비좁은 사회에 마련한 내 자리까지 흔드는 ‘그런 일’이다.
작년 10월 국회에서는 분식회계 내부고발자에게 정년까지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임금을 포상금으로 주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분식회계에 한할 것이 아니라 주식 불공정거래로, 하청업체와의 부당 계약으로, 또 사회 여러 분야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보상받아도 ‘우리’에서 내쳐지는 것이 더 아플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