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영화계 역시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사안인 ‘블랙리스트’ 파문의 핵심 피해자로서, 그 충격을 가라앉히고 또 극복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고발되고, 사무국장이 해임되는 등 영화계도 현 정부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이미 걷어내기 시작한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영화계 역시 정치권처럼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정치권이 1987년 체제를 청산한다면, 영화계는 1996년 체제를 종식시켜야 한다.
1996년, 영화계는 일대 변혁을 겪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헌법재판소가 ‘모든 검열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숙원(宿願)이었던 표현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받기에 이른 것이 가장 획기적인 일이었다. 서울 구의동에 세워진 강변CGV를 시작으로 멀티플렉스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때도 그 시기였다. 그리고 부산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첫 회의 테이프를 끊었다. 바야흐로 한국 영화계가 제2의 르네상스를 준비하던 때였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이뤘다. 박찬욱, 김기덕, 이창동 등 이른바 ‘뉴 코리안 시네마’의 기수들이 속속 등장했고 국내 영화 시장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그러나 이제 그 성과도 공(功)보다는 과(過) 쪽으로 기울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주도했던 극장 산업은 지나친 독과점 문제로 영화산업 자체의 극단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과점 규제는 이제는 필연적인 과제가 됐다. 한걸음 더 나아가 수직계열화(특정 영화사가 극장 체인망까지 소유하는 구조) 문제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제는 손을 대야 할 때가 왔다. 부산국제영화제도 출범 20여 년 만에 초기부터 이어져 온 지도부(집행위원회) 멤버 간 화합이 균열과 내홍(內訌)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언제까지 국내 영화제들이 부산, 전주, 부천, 제천 등 지방자치단체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만을 주축으로 이뤄져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영화제마다 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횡포’에 시달리면서 영화제 운영의 자율성을 탈취당하고, 궁극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마저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상영했던 ‘다이빙 벨’ 문제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부터의 예산이 깎이고, 급기야 기존 집행위원장이 (명백히 정치적 탄압을 위해) 검찰에 고발돼 해임되는 등 이만저만한 횡포를 당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서병수 현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를 갈가리 찢어 놓은 셈이다. 어디 부산영화제 뿐인가. 영화계 전체를 농단하고 훼손해 놓은 것이다.
극장 사업의 내용을 좀 고치는 것으로만, 영화제의 운영 구조를 좀 바꾸는 것으로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다. 영화계 ‘1996년 체제의 종식’이란 영화 정책과 행정의 모든 것, 아니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를 정치와 분리하는 사고에서 탈피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영화는 곧 정치이며, 정치는 곧 영화이다. 영화계는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계 인사, 더 나아가 보다 많은 문화계 인사들을 국회로 진출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화적 전문성을 국가 정책에 올바르게 대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백 퍼센트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사들을 국회와 정부에 포진시켜야 한다. 돌이켜 보면 영화계와 문화계가 그래도 비교적 좋았던 시절은 이창동 장관(문화관광부) 재임 때였다. 장관은 좀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 권력에 아부하고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