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들은 안다. 글을 단번에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소설가 김동인(1900.10.2~1951.1.5)은 탈고 없이 글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쓸 분량만큼 원고지를 미리 책으로 엮어 쪽수까지 매긴 후, 수정을 하지 않고 죽 써 내려가는 천재성을 보였다고 한다.
김동인은 신소설에서 시작된 우리의 근대소설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때까지 ‘이다’체만 쓰던 시제에 ‘였다’체의 과거시제를 도입하고, 3인칭 시점을 사용해 객관성을 확립하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로 문장 혁신을 꾀한다.
하지만 근대소설의 진화 과정에서 김동인의 가장 도드라진 역할을 꼽으라면 신소설이 안고 있던 ‘계몽성’을 떨쳐낸 것이다. 신소설은 예술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남녀평등, 자유연애, 민족주의 같은 근대적인 가치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려 했다. 당시 최고의 현대적 감각을 갖췄다는 이광수의 소설조차 그런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김동인은 계몽주의를 탈피한 다양한 소설들을 쓰기 시작한다. 낭만주의 계열의 ‘배따라기’, 리얼리즘 소설 ‘감자’, 탐미주의 대표작 ‘광염소나타’ 등 여러 스타일의 작품을 창조한다. 특히 ‘광염소나타’는 주인공이 예술을 위해 방화하고 살인까지 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다뤘다. 예술이 예술 자체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그만의 메시지였다.
소설가로서 쌓은 명성과 달리 개인적인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평양 부호인 아버지에게서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여자와 술, 마약으로 모두 탕진하고 비렁뱅이로 살아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그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기억상실증을 앓기도 한다.
급기야 병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들은 그를 두고 피란을 간다. 그는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