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보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직속 상사가 불렀다.
“당신의 성과는 매우 좋다. 그런데 동료나 직원들 평가를 보면 공격적이고 차가워 보인다고 한다. 이런 이미지를 계속 갖고 있는 건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바뀌지 않으면 이걸 성과에도 반영하겠다”라고 했다.
황민경 SC제일은행 운영리스크관리부 상무보는 깜짝 놀랐다. 오차 없이 실수 없이 하려했던 것뿐인데 뭐가 문제일까. 게다가 이걸 성과에 반영하겠다니. 철두철미한 성격상 그냥 있을 순 없었다. 이미지 쇄신에 나서기로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사내 다양성과 포용성(D&I) 위원회. 위원회 생활은 일만 알았던 황민경 상무보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젊은 직원들과 친해지려면 우선 잘 웃어야 했다. 거의 안 했던 술도 같이 마시며 어울렸고 그렇게 4년을 보내니 많은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과 개인의 삶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만 경직돼 있던 나를 풀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며 젊은 사원들에게 멘토링도 해주다 보니 서로의 만족감도 높아졌고, 저를 무섭다고 했던 사원들과도 즐겁게 지내게 됐어요.”
황 상무보에겐 경력단절의 시기도 적잖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서 6~7년 일했을 때 “세상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 즈음 비슷한 생각의 남편을 만났고 세상 탐험을 위해 사표를 냈다. 여행을 하다 마음에 든 그리스 크레타섬에 정착해 살기도 했다. 그러다 시댁이 있는 뉴욕으로 건너갔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직장이 필요해졌다. 후지뱅크에 입사가 결정됐을 때 그리 큰 욕심은 없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한 말씀이 그를 경각시켰다.
“뉴욕에서 슈트를 차려입고 직장을 나간다는 게 얼마나 멋지냐. 열심히 일해라”라고 하신 것. 그 의외의(?) 응원은 큰 힘이 되었고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
“일을 좀 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할까요. 여성 후배들에게는 ‘최고경영자(CEO)가 된다고 생각하고 일해라’고 말해요. CEO인 것처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일에 대한 철학도 생기고 파워를 갖게 된다고 본다.
“파워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에요. 직함과 권한만이 파워가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 전문적인 업무지식이 더 큰 파워가 될 때도 있죠. ‘나에게도 파워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일하는 것과 아닌 건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꼭 50:50일 필요도 없고 자신이 행복해야 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꼭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최선의 모습으로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만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