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경영도 강화하고 있다. 21일에는 ‘서민금융 거점점포’로 지정된 서울 신한은행 불광동 지점을 찾았다. 말 그대로 광폭 행보다. 조용하게 시장을 지켜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장을 감시했던 평소의 그가 아니다.
진 원장은 전형적인 ‘내강외유’형 인물로 꼽힌다. 주위 사람들과 친화력이 좋고, 강단 있는 성품을 지녔다.
진 원장을 대면한 이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주로 내놓는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기보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 준다고 한다. 이는 임직원들과의 두터운 신뢰관계로 이어진다는 후문이다.
진 원장은 공직사회에 뿌리 박힌 이른바 ‘비주류’와 ‘주류’의 차별을 두지 않기로 유명하다. 출신이나 학벌, 지역과 관계없이 업무 능력과 평판이 좋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왔다.
진 원장은 취임 후 첫 임원인사에서 부원장, 부원장보를 철저히 능력 위주로 제청했다. 8명의 신임 임원 중 3명이 소위 ‘SKY 출신’이고 나머지 5명은 지방대를 나왔다. 이 중 상업고등학교 출신도 3명이나 됐다.
진 원장의 ‘스펙 파괴’ 인사방침은 과거 걸어온 길을 보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진 원장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한 뒤 1976년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건국대학교 법학을 전공한 후 1987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1995년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공직생활은 1984년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시작했다.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관료, 금융정보분석원(FIU), 옛 금융감독위원회, 대통령비서실, 새누리당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진 원장은 2012년 금융위원회 FIU 원장에 임명되면서 ‘리더’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부침도 있었다. 진 원장은 2014년 3월 모두가 꺼렸던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으로의 흡수통합을 10개월 정도 앞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에 반발한 전임자가 물러난 후 4개월 이상 공석이었다.
진 원장은 취임 직후 임직원들에게 여러 차례 이메일과 면담을 통해 조직 안정화에 힘썼다. 아울러 인재 양성에 매진했다. 기관 통합에 따른 임직원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없애고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애를 썼다. 진 원장에게 ‘덕장’의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같은 해 11월 진 원장은 금감원의 지휘봉을 잡았다. 금감원 안팎의 사정도 녹록지 않았던 만큼 진 원장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당시 금감원을 둘러싼 금융시장은 ‘동양 사태’와 ‘KB 사태’, ‘개인정보 유출’ 등 각종 대형 금융사고에 들썩였다. 진 원장은 금감원 내부의 사기 진작과 금융시장 안정을 동시에 달성해야 할 어려움에 직면했다.
진 원장은 가장 먼저 ‘경청’의 낮은 자세를 취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금감원 안팎의 구성원들과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진 원장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인적 쇄신을 통한 내부 조직 환기, 불합리한 금융관행 개선을 통한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 금융 감독 방식 개선의 ‘삼각편대’도 완성했다.
국민체감 20대 금융관행 개혁은 1년 만에 232개 세부 이행 과제 중 72%인 167개를 완료했다.
진 원장은 금융회사에 경영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던 2년 전 약속도 지켰다. 금감원은 내년부터 관행적으로 2년마다 해온 금융회사에 대한 종합검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적인 위규사항은 일벌백계할 방침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진 원장이) 평소 금융당국은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지만, 최순실 사태에 따른 정국 혼란과 미국 금리 인상 등 내년 금융시장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