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일을 계기로 크게 깨달았다. 미국 시스템에서 형제나 부모가 부자인 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병들면 자식이 금전적인 책임을 지지만, 미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부모와 자식은 일정 시기가 지나면서부터는 금전적으로 독립된 관계가 되며, 부모는 그 점을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가르친다. 나는 그것을 대학생이 되고 미국에 가서야 깨달은 것이다.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이내 깊이 감사하게 됐다. 그런 가르침을 준 누나가 없었다면 경제적 독립이라는 문제를 그렇게 일찍 마음에 새기지 못했을 테니까.
미국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경제에 대한 경험을 익히면서 자란다. 이를테면 구두를 닦거나 이웃의 아기를 돌봐 주고 용돈을 번다. 이런 경험은 경제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과 부대끼는 문제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축구를 하면서 공 다루는 기술을 익혀가듯, 실생활 속에서 경제를 다루며 경제적 창의성을 키워가는 것이다.
한편 유대인들은 부자가 많기로도, 또 자식에게 경제 교육을 엄하게 하기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심보감’쯤 되는 오래된 잠언 모음집 ‘탈무드’에도 돈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반면 우리 부모들은 자식이 사 달라는 것, 해 달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들어주려고 한다. 자식만큼은 돈 문제로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부모로서 양육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된다. 말만 하면 뭐든지 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경제적 창의성이 전무한,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창의성은 단순히 경제 교과서를 읽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하다못해 더 이상 쓰지 않는 장난감을 동네 바자회에 들고 나가 판매하는 경험이라도 해 봐야 길러진다.
또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부모들이 돈을 멀리하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돈 많은 놀부는 미워하고, 자식 굶기는 흥부는 미화한다.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왠지 격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주의를 외면하라고 가르치는 꼴이다.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기여함으로써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돈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창피하거나 품위 없는 일로 여기면 안 된다. 당신의 아이가 잡아주는 물고기만 먹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길 바라는가, 아니면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줄 아는 능동적인 인간이 되길 바라는가? 둘 중 어느 쪽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겠는가? 답은 자명하다. 자식 스스로도 경제적인 경험을 쌓고 거기에서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