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주가연계증권(ELS) 헤지 자산에 대한 자기신탁 도입을 보류했다. 대신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운용 자금을 고유재산에서 구분해 관리하도록 한 기존 지침을 강화할 계획이다. ELS와 파생결합증권(DLS) 발행, 헤지 등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제도화 된다.
22일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파생상품시장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과 올 초 홍콩항셍지수(HSCEI)가 급락하자 해당 지수를 기초로 한 ELS에서 대량 원금손실 위기가 발생한 데 따른 조치다.
당시 증권사 여러 곳이 ELS 자체 헤지에 실패해 지난해 말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ELS를 통해 조달한 자산이나 부채가 증권사 내 여러 계정에 흩어져 손익과 리스크를 정확히 가려내지 못한 점을 주요 원인으로 봤다. 실제 H지수 급락 후 ELS가 원금손실(Knock-in·녹인) 구간에 들어서는 상황에서도 증권사는 물론이고 금융당국 조차 정확한 손실 규모를 계산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고유계정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ELS 발행대금을 자기신탁 항목이라는 특정 신탁계정으로 모으는 방안은 보류했다. ELS 시장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업계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ELS 자기신탁 계정을 도입하면 레버리지, 장외파생상품 거래 등 ELS 헤지 운용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거래가 어려워 진다고 항의해 왔다.
김태현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업계와 유관기관 등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굳이 자기신탁 방식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구분관리를 강화하면 그만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우선 구분관리를 엄격히 실시하도록 한 후 투명성 등을 지속적으로 체크해 추가적인 방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자기신탁 도입 가능성도 항상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ELS 자산 구분 관리를 위한 투자자산 요건 등 기준과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증권사에 매월 ELS 운용현황 정기 보고를 요구할 계획이다.
증권사의 유동성과 건전성 현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ELS·DLS 발행과 헤지 운용 리스크를 살피는 스트레스 테스트도 제도화한다. 금융감독원이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자본시장법상 명시된 조치명령권 등을 통해 강하게 시정 조치할 예정이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상품 판매 절차와 마케팅 요건 등을 강화했다. 회사별 ELS 상품의 위험도 산정 현황을 자본시장연구원 등 외부평가기관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기준 재정비 등을 시행한다. 저위험 투자성향 등 부적합 투자자에 대해서는 판매 과정 녹취가 의무화된다. 부적합 투자자나 고령자 등에게는 청약 후 일정기간 내 상품 가입을 철회할 수 있는 숙려기간이 부여된다.
앞으로 ELS 마케팅을 할 때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에는 상품의 수익률, 만기, 조기상환조건 등 핵심 정보를 담을 수 없도록 금지한다. 또한 금융투자협회 규정을 개정해 원금보장형 상품 표기도 제한할 예정이다. 증권사들은 상품 판매 후에도 기초자산 가격, 중도상환 가격 등 주요 정보를 투자자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한편 금융위는 장내파생상품 다양화와 거래 용이성을 높이기 위해 상장 절차를 간소화하고 거래 승수 등을 조정할 예정이다. 기존에는 새 기초자산을 사용하는 파생상품을 상장하려면 개별 상품마다 금융위 사전 승인이 필요했다. 개선안에서는 기초자산의 기본 범위만 금융위에서 승인하면 개별 상품 상장여부는 한국거래소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코스피200선물·옵션 거래승수가 글로벌 파생시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문제도 해결했다. 현재 50만인 코스피200 거래승수는 25만으로, 미니코스피200의 거래승수는 기존 10만에서 5만으로 낮췄다.
또한 투자자의 파생상품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현물자산 범위 내에서 헤지목적으로 파생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헤지 전용계좌’가 도입된다. 손실 위험이 제한적인 ‘옵션 매수’의 기본 예탁금도 기존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췄다.
해외 투자자가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 참여할 때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외국인 통합계좌(옴니버스 계좌)도 도입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홍콩 등은 해외 증권사를 통해서도 각국의 장내파생시장에 참여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장외파생상품시장에서 중앙청산소(CCP) 청산 대상 상품이 확대되고 거래정보저장소(TR) 제도, 증거금 제도 가이드라인 등이 마련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투명성과 거래편의성 제고를 위해 장외파생상품시장 전자거래플랫폼 도입을 검토 중”이라며 “제도 개선 사항들은 올 4분기부터 내년 3분기까지 자본시장법과 금감원·거래소·금투협 규정 등을 거쳐 제도화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