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언젠가 뉴스에서 ‘단풍의 절정도 막바지’라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단풍 구경이 따로 있나’ 하며 위안으로 삼노라면 기억 저편에서 먼 산의 메아리처럼 아득한 추억이 붉게 번져온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은 지금은 재개발돼 아파트로 가득 찬 성동구의 달동네였다. 동네에서도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던 집까지 가려면 계단을 아주 많이 올라가야 했다. 하나둘 올라가다 보면 덕환이네 엄마와 마주치고 백스물둘, 백스물셋까지 세다 보면 종대네 강아지와도 마주치곤 했다. 그런 달동네에도 가을이 찾아와 뒷산이 울긋불긋 물들면 철없는 코흘리개 말썽꾸러기들과 한참을 쏘다니며 추억을 만들었다.
빨간 샐비어 꽃을 똑 따서 먹는 꿀맛.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빨간 고추잠자리를 잡겠다며 사방팔방 뛰던 그날. 책장에 꽂힌 엄마의 낡은 소설책을 넘기다가 발견한,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빨간 단풍잎 책갈피.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가 나에게 두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시며 누런 서류봉투에서 쏟아낸, 마치 꽃비처럼 내 손 위로 떨어지던 붉은 단풍 잎사귀들. 와아, 하고 외치면 그제야 푸근하게 웃던 아버지의 붉은 뺨까지.
해마다 가을은 찾아오고 올해도 어김없이 단풍은 제멋을 뽐내지만, 내 유년시절을 따스하게 물들인 붉은 추억은 언제나 촛불처럼 조용히 빛나고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소중한 그날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당신도 선물 같은 붉은 추억, 오늘 하나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