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경의선이라는 철도 노선이 서울 한복판을 관통했다. 그 철길의 일부를 지하로 내려보내며 마포구 연남동엔 옛 철길이 지나던 자리가 휑하니 남았다. 서울시는 이 공터를 ‘경의선숲길’이라는 이름의 공원으로 단장해 올해 5월 말 개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라 평가된다. ‘경의선숲길’은 ‘연트럴파크’라는 이명을 얻으며, 그러잖아도 ‘뜨던 동네’였던 연남동의 상권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이제 이 인근은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대표하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번엔 마포구가 동교동에 남은 옛 경의선 구간을 공원으로 개발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이름하여 ‘경의선 책거리’다. 마포구에 따르면 3909개의 출판, 인쇄사가 마포구에 위치하고, 그 중 1047개는 홍대 인근에 모여 있다. ‘경의선 책거리’는 ‘책의 메카, 마포구’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고자 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더불어 ‘연트럴파크’의 드라마틱한 상권 성장도 기대했을 법 하다.
28일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앞에서 ‘경의선 책거리’의 개장식이 개최됐다. 마포구는 “전국 최초의 책을 테마로 한 거리를 조성했다”며 “홍대 본연의 문화를 되찾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날 개장식엔 마포 인근의 여러 출판사가 가판대를 마련해 책 할인 행사를 열었고 구에서 준비한 이런저런 볼거리들도 있었다.
‘경의선 숲길’은 옛 경의선이 지나던 자리에 산책로를 조성하고, 길 양편에 책을 살 수 있는 부스를 설치한 공간이다. 열차모양으로 마련된 인문산책, 문학산책, 여행산책, 예술산책, 아동산책, 문화산책, 미래산책이라는 이름의 부스들은 각각의 테마에 어울리는 책들을 판매하고 있다. ‘미래산책’이라는 부스는 특이하게도 e북의 판매만을 전담하고 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경의선 책거리’는 ‘연트럴파크’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을까? 개장일인 덕분인지 책거리엔 제법 인파가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한 커플은 “데이트 코스로 자주 오고는 싶은데, 먹을 만한 공간이 하나도 없는게 좀 흠인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인숙 마포구 공보담당관은 “이곳은 공원이기 때문에 이 공간 자체에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을 입점을 허가하긴 어렵다”면서 “다만 ‘경의선숲길’과 비슷하게 공원 인근에 카페나 식당이 많이 들어오길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의선숲길’도 역시 공원 내 노점 입점은 불가하다. 이곳이 ‘연트럴파크’라고 불리는 성공을 거둔건 공원 안에 노점이 입점해서가 아니라, 멋지게 단장한 공원 인근에 식당, 카페 등이 새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당장 공원에 먹을거리가 부족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널찍한 ‘경의선숲길’과는 달리 공원에 바로 근접해 주택가가 들어서 비교적 공간이 협소한 ‘경의선 책거리’는 앞으로의 상권 부흥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찍힐 수 있었다.
사실 공원이라는게 상권 살리는데만 목적을 두고 만드는 건 아니다. 세계적인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이 도시 서울에 이렇게 한가로운 유휴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원은 충분히 가치있는 공간이다. 그 공원에 마음을 살찌우는 책이 한가득 있다면 더욱 가치있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공원덕에 마음도 살찌우고, 인근 상권도 활발해지면 주민들이 더더욱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경의선 책거리’도 홍대의 또다른 명물, ‘책트럴파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