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비석(1911.5.21~1991.10.19)은 대중작가이다. 시를 쓰다가 소설로 전향해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졸곡제’로 데뷔한 그는 소박하고 친근한 인물 묘사와 관능적 표현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일제 말기인 1940년대에는 친일문학 활동을 벌인다. 1944년에 발표한 단편 ‘산본(山本) 원수’는 정비석 친일문학의 정점을 찍는 것이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1943년 4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전사한 일본 해군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원수를 따라 침략전쟁에 목숨을 바칠 것을 선동한다. 이때의 일로 그는 친일 작가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다녀야 했다.
해방 후에도 그는 대중작가로서 전력을 다한다. ‘청춘산맥’, ‘장미의 계절’ 등 숱한 통속소설을 펴냈다. 그중에서 정비석을 가장 유명하게 해준 것은 ‘자유부인’이었다. 1954년 1~8월 서울신문에 연재된 이 소설은 대학교수 부인의 일탈을 통해 향락적인 서구 문화에 물든 전후시대의 당시 풍속을 파격적으로 묘사해 195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하지만 그는 ‘자유부인’으로 고초를 겪기도 한다. 퇴폐적이고 음란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여성단체로부터 고발당하고, 공무원과 정치인의 비리를 들춰냈다는 이유로 ‘북한의 사주로 남한의 부패상을 파헤치려 한다’며 수사기관의 취조까지 받는다.
1970년대 이후로는 역사물이나 중국 고전을 새로 고쳐 쓴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민비’, ‘초한지’, ‘손자병법’ 등이 대표적이다. 1984년 출간된 ‘손자병법’은 300만 부가 팔려 198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 주류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백만 부의 베스트셀러를 내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소설가였으니 특별히 아쉬울 것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