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76엔 선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으면서 이른바 ‘슈퍼 엔고’로 또 하나의 경제적 부담을 안아야 했다. 그 여파로 1980년 이후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국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대지진으로 일본의 타격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투자자들이 앞다퉈 엔화를 매입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무모해 보였던 엔화에 대한 신뢰 이면에 바로 ‘재난 경제학’이 있었다. 지진과 쓰나미, 태풍 등 재해가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규모 복구 작업과 투자에 힘입어 이후 더 큰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재난 경제학의 핵심 논리다.
다보스포럼을 주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2월 발표한 ‘자연재해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지진과 홍수,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만 학문적으로 살펴보면 성장을 촉진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재해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자본구조를 개선하고 새 기술을 채택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메커니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종종 ‘창조적 파괴’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재난 경제학자인 일란 노이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교수는 지난 2011년 자국 캔터베리에서 일어난 지진과 관련해 2년 뒤 펴낸 보고서에서 “당시 지진이 뉴질랜드에 큰 경제적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며 “고소득 국가에서 비슷한 재난이 일어날 때 거시경제적 충격이 최소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이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재난이 발생한 지역의 생산기지가 신속히 다른 곳으로 이전될 수 있으며 구호활동이나 피해지역 복구작업 등으로 경제활동이 더욱 활발히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1995년 고베 대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한 결과 1997년까지의 일본 GDP 성장률이 지진이 발생하기 전인 1994년의 1%를 웃돌았다.
노이 교수는 1970~2003년 발생한 재해 428건을 분석한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재해 발생 연도 GDP 성장률이 오히려 1.3%포인트 높아졌다고 밝혔다.
중국 싱크탱크 국가정보센터(SIC)는 지난 2008년 쓰촨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정부가 재건 작업에 막대한 돈을 투입해 오히려 당해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포인트 추가로 올라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진으로 오래된 공장과 도로, 공항과 교량 등이 파괴되면 새롭고 더욱 효율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장기적으로 더욱 생산적인 경제를 건설할 수 있다고 SIC는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규모 재정을 동원할 수 없는 후진국에는 이런 논리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 재난 경제학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노이 교수의 연구에서도 비OECD 국가는 재난을 맞은 해에 성장률이 9.7%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노이 교수도 지난해 4월 네팔 대지진 발생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재건에는 자본은 물론 인적 자원과 원활한 정부 기능이 필요하다”며 “네팔은 재건 수행 능력에 있어서 불확실한 국가”라고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