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진의 루머속살] 언제까지 ‘계 타고 집 팔기’ 할 건가

입력 2016-09-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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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1부 차장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6년 대우조선해양·한진해운 사태….

일련의 일들은 1970년대 말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이후 국가 경제나 국민 생활 전반에 큰 타격을 주었던 사건들이다. 이들 사건의 공통된 원인은 후진적 금융시스템이 발단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땐 종금사들이 은행의 지급보증서를 갖고 저리의 일본 단기 자금을 들여와 동남아 시장에서 고금리 중장기 대출 장사를 했다. 일본 은행들은 미국이 새롭게 내놓은 BIS비율을 맞추려 자금 회수에 들어갔고, 이에 국내 종금사들이 상환 불능에 빠지자 지급 보증을 섰던 국내은행들마저 연쇄 부도 위기에 몰렸다.

여기에 신용평가에 의한 대출이 아닌, 관치에 의한 무분별한 은행들의 기업 대출이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로 내몰렸다.

이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김대중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신용카드 시장을 육성했다. 정부 정책에 금융기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카드 발급에 나섰고 가정주부, 대학생에게도 수백만, 수천만 원의 카드 한도를 내준 결과 2003년 카드 대란이 벌어졌다.

노무현 정부도 국가 균형 발전을 한다며 전국의 토지 보상금 100조 원을 단기간에 뿌린 결과, 부동산 시장이 들썩였고 전국에 개발 바람이 불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돈 되는 사업이 되자 저축은행들마저 무분별하게 발을 들여놓다가 결국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이어졌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사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수십조 원을 대출해주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저 금융시스템이 원칙대로만 돌아갔다면 최근 30여 년 중 위기나 경제에 큰 타격이 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제 정치학자이자 미래예측가 조지 프리드먼은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과 중국이 종이호랑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의 근거로 모두 금융시장의 후진성을 지적한다.

금융시장이 관치를 통해 운영되고 있고, 자본은 인맥과 관계를 토대로 흘러다니고, 이는 수많은 악성부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진정한 의미의 금융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런 금융시스템은 기업들로 하여금 주식시장에서 자산 가치를 높이는 게 아니라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재무의 주요 목적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은 일본과 중국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나라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국책은행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어느 대기업 못지않은 출자전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후진적 금융시스템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산업은행만 해도 비금융회사 출자전환, 지분 회사가 132개사에 달한다. 은행 대출을 쉽게 받는 기업은 곗돈 탄 기분으로 수익성보다 현금흐름 창출에만 매달리다 부채비율 급증으로 이어지는 일들을 반복한다. 결국에는 집까지 팔아먹는다는 ‘계 타고 집 판다’는 속담처럼 된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의 지적대로 관치가 사라지고 기업들은 은행 대출이 아닌 주식시장 등 자본시장에서 자산 가치를 높여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방향으로 가야 주식시장도 살고 금융업계도 산다.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도 산다. 언제까지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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