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과 ‘혁신’. 지난 2년간 본인만의 방식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공백을 메우며 ‘뉴 삼성’을 차근차근 만들어 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책임경영에 시동을 건다.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사업재편, 창의적 조직문화 구축, 그리고 최근 ‘갤럭시노트7’발(發) 신뢰경영 등 그간 이 부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과감한 결단을 내리며 실용과 혁신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삼성을 구축해 왔다.
지난 2년 4개월 동안 와병 중인 이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삼성그룹을 이끌어 온 이 부회장은 그동안 본인의 목소리를 드러낸 적이 없지만, 등기이사 선임을 통해 공식적으로 책임경영을 본격화한다. 이 부회장은 오는 10월 27일 개최되는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되고 그날부터 등기이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 부회장은 2010년부터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맡으며 경영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아왔다. 2014년 5월10일 이 회장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이 부회장이 처음 경영 전면에 나섰을 때 당시 외신들은 삼성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불안한 승계”라는 비평 일색이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폭넓은 대외행보와 이에 따른 사업적 결실이 하나 둘 나오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문제가 생기면 현장으로 달려가 대화와 소통으로 최적의 답을 찾는 이 부회장의 경영행보로 삼성은 애플과 MS(마이크로소프트) 등 경쟁업체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비주력 사업은 정리한 반면 미래 신사업은 보강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기존 주력 사업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자 이 부회장은 삼성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했다. 2014년 11월 방산·석유화학 계열사 4곳을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이듬해 10월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SDI의 케미칼사업 부문을 롯데그룹에 넘기며 조직을 슬림화했다.
동시에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 부품계열사들은 자동차 전장사업을 신사업으로 삼고 전열을 재정비했다. ‘전자·바이오·금융’을 3대 축으로 잘 할 수 있는 사업 중심의 체질개선을 이뤄낸 것이다. 업계는 이 부회장이 향후 자동차 부품과 금융 등 신사업을 위한 인수합병(M&A)과 투자, 추가적 사업재편을 진두지휘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갤럭시노트7’ 발화 이슈로 삼성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이미지 실추가 우려되는 이 시점에 등기이사로서 책임경영 의지를 밝힌 점이 주목된다. 하반기 전략 신제품 출시 자체가 백지화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에 경영 참여를 공식화하며 대내외 불안을 잠재우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업계는 1조 원 수준의 손실과 나아가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 하락 등 유무형의 피해가 예상되는 갤럭시노트7 사태를 이 부회장이 책임지고 풀어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연말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 여부다. 삼성은 이번 등기이사 선임과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 연관성에 선을 긋고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만큼 올 연말 대대적 조직개편과 인사쇄신 등이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