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가 청약과열을 막기 위해 공동주택용지 신청자격 제한이라는 카드를 꺼내들면서 건설사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형 건설업계는 이번 방침을 반기는 분위기지만 그동안 공공택지를 기반으로 공격적인 주택사업을 펼쳤던 중견건설사들은 비상에 걸렸다.
1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공사는 지난달 26일 이후 공급 공고를 내고 있는 공동주택용지에 대해 주택건설실적에 따라 신청자격을 제한하기로 했다.
그동안 건설사들은 주택건설실적 등과 관계 없이 공동주택용지 추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주택건설사업자라면 누구든 가능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최근 3년간 300가구 이상 주택건설실적과 시공능력을 가진 업체에만 1순위 신청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일부 건설업체가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 수십 개의 계열사를 동원하거나 페이퍼컴퍼니까지 만들어 추첨에 참여하는 과열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번 조치의 이유다.
실제로 지난 3월 LH가 시흥목감에서 마지막으로 공급한 공동주택용지 B9블록 분양에 건설업체 304곳이 몰려들었다. 당시 공급과잉 논란과 주택담보대출 여신심사 강화 여파로 부동산 시장의 심리적 위축이 일어날 때였지만 택지지구 내 주택용지를 확보하려는 건설사의 경쟁은 뜨거웠다.
다른 지역의 공동주택용지 분양의 경쟁률은 더 치열했다. LH가 지난 4월 분양한 남양주별내지구 A20블록은 694대 1, 같은달 공급한 고양향동의 경우 629대1까지 치솟았다. 5월 분양한 인천청라지구 A30블록의 경쟁률 역시 610대 1에 도달했다.
이같은 경쟁률이 가능한건 보통 1개의 중견건설사가 용지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개의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나서기 때문이다. 공공택지 주택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반도건설, 호반건설, 중흥건설, EG건설 등 약 20개 중견 건설사들이 적게는 20여 개에서 많게는 30여 개까지 계열사를 동원하기 때문이다. 일시적 관계사까지 함께 나설 경우 한 중견사에서 동원되는 업체 수는 40여 개를 넘고, 한 업체의 경우 70여 개까지 동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LH 관계자의 설명이다.
만약 계열사가 용지를 낙찰받은 경우 이들 업체는 모회사에 용지를 전매한다. 지난해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으로 공동주택용지를 공급받은 계열사가 모회사에 전매하는 행위가 금지됐지만 이같은 계열사 동원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중견건설사들은 LH의 이번 조치에 비상이 걸렸다. 공공택지를 중심으로 한 주택사업의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앞으로 몇개월 동안 주택용지 확보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한 중견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공공택지 공급물량을 축소한다는 방침을 내놨는데 이번엔 규제까지 도입해 중견사들의 주택사업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재건축·재개발에서도 중견사들이 약진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여전히 대형사들과의 경쟁에서는 브랜드파워에서 밀리고 뉴스테이 사업도 너도나도 달려들어 쉽지 않아 앞으로 사업 계획과 추진이 막막한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LH는 이번 규제를 일단 연말까지 시행한 뒤 효과를 분석해 시행을 이어갈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만약 시행이 결정될 경우 공격적으로 공공택지 주택사업을 이어오며 유명세를 떨쳤던 중견사들은 타격이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대형건설사들은 이번 조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주택협회 한 관계자는 "앞서 국토부에 공동주택용지와 관련한 실적제한 규제 적용 등의 내용을 건의한 바 있다"며 "이번 규제가 한시적일 것이라는 얘기가 있어 다소 아쉽지만 다른 중견사는 물론 대형사들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