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칼럼] 기업 사업재편 미룰 때 아니다

입력 2016-09-0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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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겸임교수(전 고려대 총장)

기업이 사업구조를 자율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최근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제고법이 시행됨에 따라 기업이 원하는 사업재편을 간소화하고 갖가지 지원도 해준다. 지금까지 기업이 사업구조를 재편하려면 상법, 세법, 공정거래법 등의 규제를 받아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기업활력제고법 시행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사업재편 승인만 받으면 모든 규제와 절차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금융, 세제, 연구개발, 고용안정 등 갖가지 혜택을 받는다. 특히 기업은 법의 특례를 받아 주주총회 대신 이사회에서 사업재편을 의결할 수 있다. 또 기존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의 행사조건을 제한해 자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단, 기업의 사업재편이 기업활력제고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업종이 공급과잉 상태이어야 하고 또 사업재편의 목표가 생산성 향상과 재무구조 개선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시급하다. 우선 주력 수출산업이 대부분 공급과잉 상태이다.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 수출물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기존의 시장마저 빼앗기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수출은 2년 가까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별로 볼 때 조선과 해운이 자생력을 잃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앞으로 철강, 석유화학, 건설, 액정표시장치, 자동차 엔진, 건설기계 등 주력 산업들도 줄줄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내수산업도 문제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 중심이다. 수출이 위축되면 내수산업이 성장기반을 잃는다. 더욱이 사상 최대규모의 가계부채와 전 세대에 걸친 고용불안으로 인해 소비심리가 땅에 떨어졌다. 따라서 내수 관련 기업들의 생존이 불안하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들이 경기회복을 기다리며 현실에 안주할 경우 연쇄부도의 재앙을 초래한다.

사업구조 재편에 대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의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상황이 악화하자 일본 정부는 1999년 산업활력법을 제정해 공급과잉 업종의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은 이 법에 따라 선제적 대응을 서둘러 최근까지 648개 기업이 사업구조 재편을 마쳤다. 사업재편을 단행한 기업들은 부도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생산성과 수익성을 개선해 당기순이익을 평균 37%나 증가시켰다. 일본 정부는 산업활력법의 효과를 높이 평가해 2014년 동법을 산업경쟁력강화법으로 개정해 확대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활력제고법의 시행이 본격화할 경우 기대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업들이 부실한 사업을 정리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해 부도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또 사업의 전문화와 생산성 증가를 가져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더 나아가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 발굴에 노력을 집중해 경제가 성장동력과 고용창출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

기업활력제고법의 부작용도 있다. 우선 기업들은 이 법의 원래 목적인 생산성 향상과 재무구조 개선을 빙자해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강화를 추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병인 시장독과점과 세습경영이 고착화할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의 사업재편을 심사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사업재편계획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전문성은 물론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하여 공정한 사업재편 심사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법의 부작용을 차단해야 한다.

기업활력제고법은 기업부실을 막는 것이지 경제를 살리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산업활력법이 미쓰비시나 히타치 같은 기업들은 살렸지만 일본 경제를 살리지는 못했다. 실제로 기업들이 사업재편을 추진할 경우 고용불안이 불가피하다. 또 부실한 사업을 정리하기 때문에 산업규모가 축소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 따라서 경제의 성장잠재력 확충이 필요하다. 정부는 신산업 발굴과 기업의 창업을 활성화하는 획기적인 정책을 기업활력제고법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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