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통문’은 구한말 여성들의 놀랍고도 힘찬 외침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직업을 가질 권리를 말하면서 남자와 평등한 교육권을 갖겠다고 주창했죠. 구습을 타파하고 문명개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선각적 여성들의 용기와 정신, 실천력이 오늘날의 여성교육을 발전시킨 힘입니다.”
박용옥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1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덕성여자중학교에서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와 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 주최로 열린 ‘여권통문’ 기념식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박 교수는 ‘여권통문의 역사적 의미’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섰고 여권통문의 주요 내용과 의미, 당시 시대상황, 여권운동의 진행 과정 등을 설명했다.
여권통문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권익증진을 촉구하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인권선언문으로 1898년 9월 1일 발표돼 올해로 118년을 맞이했다. 여성의 참정권과 직업권, 교육권 등 3가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우리나라 여권운동의 발단이 됐다.
박 교수는 “여성들은 3가지 권리 중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고 직업을 가지고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 선각적 부인들의 생각이었다”면서 여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여성교육기관 설립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전했다.
당시 여성들은 민립 순성여학교를 설립 운영할 협력단체로 우리나라 최초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했다. 19세기말 교육입국론이 주창되면서 정부에서는 관립 남학교를 설립해 근대교육을 실행했는데, 관립 여학교는 없었기 때문. 약 400명의 찬양회 회원은 회비를 모아 학교를 운영했지만, 당시 정치사회적 시대상황의 어려움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박 교수는 “교육 불평등이 심화돼 있는 사회현상을 말해준다. 당시 여성들은 남자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자 관립 여학교 설립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너무 절실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면서 “당시 여성교육의 염원이 성취되지 않았지만, 애국계몽기와 일제강점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성교육이 힘차게 발전한 것은 여성통문을 세상에 내놓은 선각적 여성들의 외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전히 존재하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성차별을 없애고 여성들의 권익신장을 위해선 여성교육을 통한 역량개발과 함께 선각자들의 삶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야함을 강조했다. 이 부분은 국내 여성사박물관 건립과 맥을 함께한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조희연 교육감은 “118년 전의 여성권리선언의 의미를 담아 여성사 박물관을 새롭게 추진하는 결의를 다지는 자리”라면서 “여성의 역사를 다양한 주제로 보여주고 전시하고 교육하는 공간이 만들어져야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금래 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 이사장과 이원복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대표,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현주 국립 여성사전시관장, 등을 비롯해 덕성여중 교사와 학생 25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