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조문 이틀째를 맞이한 28일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빈소에 '롯데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침묵 속 애도와 조용한 눈물만이 장례식장을 휘감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는 전날 故이인원 부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이후 이날 정오 경에도 다시 빈소를 찾았다. 노신영 롯데그룹 총괄고문(전 18대 국무총리)도 이날 12시 47분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들은 영정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애도했다. 30분 가량의 조문을 마치고 심경이 어떤지, 롯데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등 취재진들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떠났다.
신 전 대표는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총애를 받앗던 대표적인 '스타 CEO'였다. 롯데그룹의 첫 공채 출신 CEO로 내부에서도 상징적인 인물로 여겨졌던 인물이다.
신 대표는 1979년 롯데쇼핑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20년간 구매·관리·영업·기획·마케팅 등 분야를 두루 거친 후 1998년 임원(이사대우)이 됐다. 이 부회장과는 비슷한 길을 걸어온 롯데맨으로 그에게는 생전에 멘토와도 같았던 선배다.
노 고문은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롯데그룹 총괄고문을 맡았다. 이 부회장과는 10년 넘게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위, 아래층에서 지내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아침 8시경에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 부회장의 빈소에 롯데알미늄, 롯데마트, 롯데렌탈, 롯데건설 등 롯데그룹 계열사 8곳의 임직원이 잇달아 방문했다.
이들은 조문을 마친 후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평소 이 부회장의 성품과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만 흘렸다.
전날에는 신동빈 회장이 조문을 다녀갔고 롯데그룹 임직원, 충신교회 관계자 등 이 부회장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특히 충혈된 눈과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빈소에 들어선 신 회장은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영정을 응시하며 눈물만 흘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상주인 이 부회장의 아들 정훈 씨 등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10시 30분경 그는 빈소를 떠나면서 취재진이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이냐' '고인과의 마지막 만남이 언제냐' 등 질문을 쏟아내자 울음을 터트렸다. 남색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 막고 대답하지 않았다. 간간이 눈물 섞인 숨을 쉰 그는 발걸음을 빨리 옮기며 떠났다. 이날 신 회장의 조문에는 그룹 '실세'로 알려진 황각규 롯데쇼핑 사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사장)이 함께 했다.
아침 일찍부터 빈소를 지켰던 황 사장은 이 부회장에 대해 "더 있었으면 보다 훌륭한 롯데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분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이 부회장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적이 언제냐는 질문에 "조사 들어가기 전 통화를 했다"며 "내게 '힘내라'고 했다"고 전했다.
앞서 황 사장은 지난 25일 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 관련 소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황 사장은 당시 20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던 도중 이 부회장 관련 비보를 듣고 비공개 귀가조치 받았다.
이 부회장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충신교회 원로목사는 "(이 부회장이)최근에 쉬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고, 아내도 아팠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현재 빈소는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 사장을 비롯해 허수영 롯데캐미칼 대표, 김치현 롯데건설 대표,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 표현명 롯데렌탈 대표, 김영준 롯데알미늄 대표, 이자형 롯데첨단소재 대표, 박동기 롯데월드 대표 등이 지키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조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은 건강이 좋이 않은데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조문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총괄회장은 이 부회장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소환일인 26일 오전 경기도 양평 한 산책로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그는 43년간 롯데그룹에 몸담은 신 회장의 최측근이자 롯데그룹의 2인자다.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해 2011년에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본부 본부장에 올랐다. 롯데그룹에서 오너일가를 제외하고 순수 전문경영인으로 부회장 직함까지 단 것은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신 총괄회장과 롯데그룹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룹내 롯데 직원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통한다.
업무에 있어서는 의심나면 끝까지 파헤치는 철저함, 불시에 점포 매장을 방문하는 현장점검으로 유명했다. 롯데그룹은 이 부회장을 '평생 헌신적으로 롯데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