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한미약품은 두 개의 고혈압약 성분(암로디핀+로사르탄)을 섞어 만든 복합제 ‘아모잘탄’을 허가받았다. 간판 제품 고혈압치료제 ‘아모디핀(성분명 암로디핀)’에 MSD의 고혈압치료제 ‘코자(성분명 로사르탄)’를 결합해 두 개의 약을 하나의 알약으로 만들었다. 국내업체가 개발한 최초의 복합 개량신약이다. 당시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가 유사한 조합의 고혈압복합제 ‘엑스포지’를 판매 중이었지만 아모잘탄은 2010년 연 매출 500억원을 넘어서며 파란을 일으켰다. 두 개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한알의 약으로만 치료가 가능하도록 복용 편의성을 높이는 전략이 주효했다.
아모잘탄의 성공 영향으로 국내제약사들이 일제히 복합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현재 동일 시장에 유사 제품이 수백개 진입하며 과당경쟁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보령제약은 고혈압 복합제 ‘듀카브’ 3종을 출시했다. 듀카브는 보령제약이 자체개발한 고혈압 신약 '카나브'에 또 다른 고혈압약 성분 '암로디핀'을 결합한 복합제다.
지난 2011년 카나브 발매 이후 카나브를 활용한 복합제 시리즈의 핵심 제품이다. 보령제약은 2013년 카나브에 이뇨제를 결합한 ‘카나브플러스’를 출시했고, 고지혈증약 ‘로수바스타틴’을 결합한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도 개발 중이다. 보령제약은 카나브 개발을 완료하면서 복합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보령제약 측은 카나브가 연간 3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인기몰이를 한 만큼 복합제도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의약품 조사업체 유비스트의 원외처방 실적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고혈압치료제 시장에서 베링거인겔하임의 ‘트윈스타’(476억원), 한미약품의 ‘아모잘탄’(333억원), 노바티스의 ‘엑스포지’(327억원) 등 ‘CCB+ARB’ 복합제가 시장 판도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국내 시장에서 수많은 고혈압복합제의 출현으로 새로운 복합제가 경쟁력을 발휘하기엔 쉽지 않은 여건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고혈압치료제 ‘암로디핀’ 성분을 함유한 고혈압복합제는 총 438개에 달한다. 의약품 영업을 하는 국내제약사 모두 고혈압복합제 1개 이상은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보령제약에 앞서 종근당, 동아에스티, CJ헬스케어, 대원제약 등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춘 업체들은 대거 복합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국내 업체들이 고혈압 복합제 시장을 집중적으로 두드리는 이유는 시장성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고혈압치료제 시장에서 복합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미 한미약품이 아모잘탄으로 복합제의 시장성을 입증했다. 국내 업체가 개발한 신약 중 아모잘탄보다 많이 팔린 제품은 아직 없다.
시장성도 불투명하고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상대적으로 신약보다는 개발이 수월하고 시장성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도 제약사들이 복합제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복합제 개발에 약 2~3년, 20억~30억원 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제약사들은 의약품 합성 기술은 다국적제약사들에 견줘도 부족하지 않다. 자본과 기술력 여건에 맞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너도나도 복합제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제약사마다 고혈압복합제를 쏟아내면서 아모잘탄 출시 이후 7년만에 시장은 과열경쟁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암로디핀이 함유된 고혈압복합제를 보면 일부 성분들간의 조합이 무한 복제를 통해 새로운 복합제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반복됐다. 암로디핀의 경우 변형 성분인 'S-암로디핀'을 비롯해 부가성분 ‘염’을 다른 성분으로 대체한 제품이 속속 등장했다. 여기에 암로디핀과의 결합 대상 ARB 고혈압약도 로사르탄, 올메사르탄, 발사르탄, 텔미사르탄 등 다양화하면서 복합제 종류도 기하급수로 늘었다. 노바티스 엑스포지의 특허만료로 90여개 업체가 복제약(제네릭)을 내놓은 것도 고혈압복합제의 무한 복제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2009년 보령제약이 카나브를 발매할 당시에는 고혈압 복합제가 엑스포지와 아모잘탄 2개에 불과했지만 카나브 복합제를 개발하는 동안 수백개의 유사 제품이 등장한 셈이다.
고혈압복합제 뿐만 아니라 다른 복합제 영역도 유사 제품들의 개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미약품, 종근당, 대웅제약, 유한양행, JW중외제약 등 수십개 업체가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를 내놓았거나 개발 중이다. 3개의 성분을 결합한 복합제도 유사 조합 제품이 수십개 발매될 조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국내제약사들이 진행한 임상시험 220건 중 복합제는 86건으로 39.1%에 달했다. 과거 아모잘탄의 사례처럼 어렵게 복합제 개발에 성공했더라도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기는 힘든 환경이라는 분석이다.
제약사 한 개발본부장은 “신약개발은 쉽지 않고 제네릭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신제품 발굴이 절실한 제약사들에 복합제는 매력적인 분야로 꼽힌다”면서도 “경쟁사의 복합제 개발 소식을 듣고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유사 제품 개발에 뛰어드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업체는 기존에 팔리던 2개 성분을 결합한 복합제 임상시험에 착수하고도 경쟁사에 정보가 흘러갈 것을 우려해 구성 성분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현상도 나타나는 실정이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아무리 시장성이 높은 분야라도 수백개 유사 제품간 과당경쟁이 펼쳐지면 제약사들이 한정된 시장을 나눠갖는 구조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면서도 “경쟁업체를 따라가기보다는 차별화된 시장을 창출하는 데 주력해야 중복투자에 따른 사회적 비용 낭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