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수십억 달러 투자에 나서는 등 스페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노동 유동성과 함께 광범위한 현지 부품업체 네트워크가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매력으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 폭스바겐과 다임러는 최근 스페인 생산량을 늘렸다. 폭스바겐의 경우 지난해 스페인 북부도시 팜플로나 공장에 10억 유로를 투자하고 공장 인력도 500명을 더 늘리기로 했다. 현재 공장 인력은 4500명이다. 대신 폭스바겐은 시급은 종전보다 0.50유로 낮추고 연간 근무 일수를 하루 추가하기로 노조 측과 합의했다.
폭스바겐은 스페인에서 차세대 ‘폴로’ 모델을 생산할 계획이다. 다임러는 2012년부터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비토리아에 10억 유로를 투자했으며 현재 ‘벤츠 비토’, ‘V클래스’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프랑스의 르노와 PSA푸조시트로앵도 전략적 요충지로 이곳에 공장을 두고 있다. 특히 독일 완성차 기업은 지난해에만 48억 유로를 쏟아붓는 등 스페인에서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는 독일 해외직접투자(FDI)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노동법 측면에서 유연성이 높은데다 현지 부품 업체의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부품 조달이 쉽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산하의 스페인 자동차 브랜드 세아트(SEAT)의 호아킴 힌즈 재무설계책임자는 “스페인이 동유럽과 비교는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스페인이 프랑스나 독일 등 다른 유럽국가보다 생산 비용이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주변 유럽국가와 달리 자국 자동차 브랜드는 없지만 독일에 이어 유럽내 2위 자동차 생산국이다. 전세계에서는 8번째 생산국이다.
스페인이 글로벌 자동차 생산 요충지로 부각된 것은 2012년 노동법이 개정된 이후부터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당시 보수 색채를 가진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노동법을 개정, 해고절차를 간소화하고 노사간 단체협약의 효력을 약화시켰다. 여기에 경영 상태가 악화할 경우 사측이 노조와 별도의 합의 없이도 임금은 물론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특히 2012년 이후 3개 분기 연속 매출이 감소할 경우 기업이 정규직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업 친화적으로 노동법이 대폭 개정됐다. 힌즈 책임자는 “노동법 개정이 스페인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개선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자동차 분야가 차지하는 2005년 5.2%에서 지난해 기준 8.7%로 늘어났다. 노동시장에서는 9%가 자동차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그만큼 스페인 경제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이야기다.
잘 갖춰진 부품 업체 네트워크도 글로벌 완성차 기업에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포드는 2014년 벨기에 헹크 소재의 공장을 정리하고 스페인 발렌시아로 생산공장을 이전했다. 포드는 발렌시아 공장에 2020년까지 23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포드가 벨기에 공장을 정리하고 스페인 발렌시아로 이전 이유는 이 지역의 부품 공급 업체 때문이다. 린다 캐시 포드 유럽 법인 생산 부문 부사장은 “부품 공급업체가 발레시아 공장의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스페인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게스탐프(Gestamp)는 20여개국에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의 정정불안은 자동차 산업에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스페인에서는 의회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이 나오지 않아 6개월새 두번의 총선을 치러야 했다. 최대야당인 사회노동당과 극좌성향의 포데모스연합이 노동개혁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당은 중도우파 시우다다노스와 손을 잡지 않으면 연정 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경우 스페인은 1년 안에 또다시 총선을 치러야 하며 노동법도 또다시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WSJ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