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일군 것을 뒤로 하고 오로지 지혜만 갖고 다시 새로움에 가치를 부여하고 험난한 여정에 나선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물티슈로 연간 400억 매출이라는 신화를 쓴 장본인. ‘순둥이’라는 이름의 물티슈로 명성을 떨친 이미라 뉴본스킨 대표(전 수오미 대표)다. 물티슈 업계의 신화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이미라 대표가 자식 같은 순둥이를 두고 나홀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왜 또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다시 신화가 쓰여질 수 있을까. 이 대표가 원하는 삶은 가치는 무엇이며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이 대표가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작은 오피스텔. 약 10평 남짓 되는 사무실에 5명의 직원과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지난 4월 뉴본스킨을 설립하고, 스킨케어 브랜드 ‘간나나기’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새롭게 뭔가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흥미롭게 보더라고요. 놀리기도 하고요. 100세까지 산다고 하는데, 직업을 3번 정도는 바꿔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늦기 전에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죠. 10여 년 동안 유아용품 업계에서 아기 피부만을 연구했는데, 그동안 쌓은 노하우들을 그냥 묵혀두기에는 아깝더라고요”
물티슈 업계 최초 여성 CEO인 이 대표는 순둥이를 국민 물티슈 반열에 올려놓았고, 굳이 다른 길을 택하기보다 기존의 울타리 안에서 신사업을 추진해도 될텐데 굳이 새 길을 택했다. 이유가 있긴 하다. 기존 업체는 공동대표 체제로 두 사람의 경영 가치관이나 사업방향성이 같지 않으면 함께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했다.
“기업도 생물이에요. 성장기와 쇠퇴기를 거치면서 발전해나가고, 경영진과 조직원들이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죠. 막상 스타트업에 하겠다고 나서고 보니 힘든 부분이 많더군요. 실무에 익숙하지 않아 적응하는 데 꽤 걸렸죠. 창업기금을 융자받으려고 구청도 찾았죠. 직접 발로 뛰어다니니 CEO 자리에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순둥이를 만들 때는 선두에 서는 것이 즐거운 일인 줄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는 깨달음도 찾아왔죠”
주변 기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까. 10여 년간 매일 물티슈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3개월이나 걸렸다. 기존 물티슈 생산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데도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쉽지 않았단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기존 세정 중심의 물티슈를 업그레이드해 보습 역할이 가능한 스킨티슈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 거기다 자연주의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제품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로션과 크림 등 스킨케어 제품도 마찬가지. 이 대표의 경영가치관은 브랜드명만 봐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간나나기’는 ‘갓난아기처럼 갓 태어난 피부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단어가 주는 느낌대로 자극을 줄 수 있는 성분은 최대한 배제하고 신생아부터 민감한 성인 피부까지 사용할 수 있는 순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앓아왔고 그래서 좋다는 제품은 정말 다 써봤어요. 피부는 한번 손상되면 복구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특히 어린 아기 피부는 외부 자극에 쉽게 손상될 수 있어 오롯이 아기 피부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소비자는 무서워요. 정말 현명하죠. 지속적으로 리뉴얼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야해요”
이 대표는 시장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 신중했고 조심스러웠다. 아이를 위한 제품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사야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제품이 정직하고 건강해야한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인지되기까지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기존 제품들과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했고 이를 연구소와 공장에 요구했다. 그러나 생산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아기로션 등에 흔히 사용되는 실리콘 오일의 종류인 디메치콘을 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작은 차이를 만드는 게 어렵더군요. 유해성분과 화학성분을 최소화하려다보니 생산공장과 마찰이 심했어요. 빼고 싶은 성분들이 많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요. 디메치콘의 경우 코팅 효과와 흡수력이 뛰어나 피부가 탱탱해 보이지만 피부에 남아 노폐물과 땀 배출을 어렵게 만들고 트러블의 원인이 되거든요. 저를 비롯해 연구소·공장과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결국 제조사를 2번 바꿨죠”
제조사에서도 그간 없던 생산 공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니 어려움이 따랐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어줄 제조사를 찾았고, 생산 당일까지도 싸움을 이어가면서 제조사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불굴의 의지와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피부에 대한 남다른 애착은 과거 수오미를 경영할 당시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과거 순둥이 물티슈가 유해물질 논란에 휩싸였을 때 독일까지 가서 안전성 인증을 받아왔다. 그 덕에 순둥이는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이 대표의 인생을 돌아보면 현실에 안주한 적이 없다. 늘 인생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화학을 전공하거나 한 사람도 아니다. 사진학을 전공하고, 예술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학 석사과정을 밟은 이 대표는 스튜디오를 접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물티슈 사업에 뛰었다. 어려움을 이겨내며 승승장구했던 순둥이를 내려놓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선 것도 마찬가지.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을 때를 알고 놓을 줄 아는 지혜가 지금의 이 대표를 만든 게 아닐까.
“수오미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는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니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질도 중요하고, 추진력, 결단력, 통찰력 등 CEO가 갖춰야 할 덕목은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사업가로서 성공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닐까요. 특히 여성 CEO로서 엄마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실제로 경력단절 여성들은 육아 경험으로 상황 대처가 뛰어나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는 만큼 책임감도 강하죠. 앞으로 경력단절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설 자리가 많아지고, 여성과 아이를 위한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