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의 해변을 피로 물들인 ‘트럭 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달 26일, 이번에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유서 깊은 도시 루앙 인근의 생테티엔 뒤 루브래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 중이던 80대 노(老)신부를 젊은 IS 추종자 2명이 칼로 목을 베어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 경찰은 현장에서 범인 2명을 모두 사살했는데 사건 1시간 후 IS는 이들이 IS의 전사라고 주장했다.
범인들은 이 마을에 사는 알제리계 프랑스인 아델 케르미슈(19)와 프랑스 동북부 보주 지역 출신의 압델 말리크 나빌 프티장(19)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둘 다 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에 가려다 중도에 제지당한 인물들로 테러 용의자 명단에 있는 인물들이다. 이 중 케르미슈는 전자발찌를 차는 조건으로 지난 3월 석방된 보안사범으로 하루 중 외출 가능한 네 시간을 이용해 이 범행을 저질렀다. 한편, 프티장은 최근에 ‘급진화’된 인물로 TV 회견에서 아랍계로 보이는 그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성당과 사제에 대한 테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가톨릭교회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프랑스에서 이 사건은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담화에서 이 테러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프랑스)공화국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규정하고 프랑스는 국내외에서 전쟁 중이며 이 전쟁은 긴 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는 지금 밖에서는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IS와 교전 중이고 안에서는 IS 전사가 된 자국 시민들과 전쟁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니스 테러 발생 직후 작년 11월 파리 바타클랑 극장 테러 이후 프랑스 본토 전역에 선포돼 지난달 말에 해제할 예정이던 ‘비상사태’를 6개월간 또 연장했다. 프랑스가 이렇게 장기간 비상사태를 실시하는 것은 알제리 전쟁(1954~1962)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프랑스 사제 테러 발생 다음 날 폴란드를 방문 중이던 프란시스코 교황은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라고 논평하면서 IS 테러와의 전쟁을 1·2차 대전에 비유했다. 그러나 그는 “이는 돈과 자원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다. 종교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이슬람 극단주의의 종교전쟁 주장을 일축했다.
지난 3주간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생한 네 건의 테러는 삶의 축제가 되어야 할 유럽인들의 바캉스철을 죽음과 공포의 계절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관광대국인 프랑스의 경제에도 큰 악재이다. 7월 중 프랑스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10% 감소했으며 8월에는 프랑스를 목적지로 하는 항공기 예약이 20%, 니스행 항공기 예약은 50%씩 각각 줄었다.
작년에 두 차례의 큰 테러(1월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11월의 바타클랑 극장 테러)를 겪으면서도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며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주었던 프랑스 국민들은 니스 테러를 계기로 정부의 대테러 대책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니스 테러 후 르 피가로(Le Figaro)가 보도한 ‘IFOP’ 여론조사에 의하면 테러 대책 관련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를 신뢰한다는 프랑스 국민은 33%로 나타났다. 이는 작년 1월의 51%와 11월의 50%에서 현저하게 감소한 것이다. 또 하나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 10명 중 8명은 테러를 완전히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숙명론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도 달라졌다. 니스 테러 전까지는 여·야가 정쟁을 자제하고 외부의 위협에 맞서 ‘국민적 단결’을 과시했다. 그러나 내년 4, 5월(1차 및 결선투표)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야권은 정부의 대테러 정책을 비판하며 집중 포화를 시작했다. 대선 출마가 예상되는 우파 공화당(Les Republicains, LR)의 당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니스 테러 다음 날 방송에 출연, “6개월마다 희생자를 애도할 수는 없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마뉘엘 발스 총리는 모든 테러 용의자들을 수감하자는 사르코지 야당 대표의 주장에 ‘프랑스판 관타나모’를 운영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전통적으로 인권을 중시해온 현 좌파 정권과 치안과 질서를 강조하는 우파 사이에는 테러 문제 접근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극우정당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은 지난 18개월 사이 프랑스에서 250명이 테러에 희생됐다며 내무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르펜은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내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알랭 쥐페보르도 시장(전 총리)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계속되는 테러 발생으로 그의 지지도는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테러 문제는 이제 여·야 간의 정쟁으로 비화하면서 내년 프랑스 대선의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지난주 아멜 신부 테러 후 실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IFOP의 조사에 따르면 91%의 응답자가 테러 문제가 내년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응답해 경제 회생이나 실업 대책보다 이 문제가 더 절박함을 보여주었다.
프랑스는 왜 IS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에 IS 테러가 집중되는 것은 다문화 사회가 된 프랑스의 사회통합 실패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IS 공격의 선봉에 서는 프랑스의 대외정책이 가져온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기에 많은 사상자를 낸 알제리 전쟁 등 식민지 시대의 구원(舊怨)이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의 무슬림 문제는 미국의 흑백 갈등 못지않게 매우 복잡한 문제로 단기 처방이나 묘책이 없는 난제다. 1962년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프랑스에는 북아프리카 출신 노동 이민자가 대거 유입된다.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프랑스 내무부 통계에 의하면 500만 명에서 600만 명으로 프랑스 전체 인구 6600만 명의 7~9%)를 가진 다민족 국가가 되었다.(프랑스는 1905년 제정된 ‘정교분리법’에 의해 인구조사 시 종교나 인종을 묻지 않는다. 따라서 이 수치는 추정치로 편차가 크다.)대부분이 아랍계인 무슬림 이민자들은 거개가 대도시의 교외(banlieue)에 따로 게토를 형성하여 살고 있다. 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아랍계 프랑스인들은 일요일 공영 방송 종교 시간을 제외하고는 프랑스 TV에서 보기 힘들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남성이 흔히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듯이 프랑스 대도시에서는 아랍 청소년들을 ‘잠재적인 소매치기’로 보는 경향이 있다. 또 프랑스는 공화국의 원칙인 ‘세속주의’를 내세워 영국과는 달리 공립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해 무슬림 사회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무슬림 청년들의 실업률은 지역에 따라 40%가 넘는 곳도 있어 IS를 추종하는 테러리스트가 나오기 쉬운 환경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프랑스에는 현재 5600명의 테러 관련 감시 대상이 있다.
이민 문제 전문가인 데이비드 리프는 ‘테러와의 긴 전쟁(The Long War on Terror)’ 제하의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발스 총리가 니스 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야유를 받은 이유는 정부의 테러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민자의 자녀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못 받고, 절망적이며 난폭해진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어 곪아터지고 있는 사회 환경을 유럽 도처에서 정치 엘리트들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런 도시로 파리, 브뤼셀, 베를린과 런던을 예로 들었다.
한편 7월 27일자 르몽드는 ‘증오의 전략에 저항하라’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IS가 프랑스를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무슬림 인구가 많은 이 나라에서 종교 내란을 일으켜 서양은 이슬람과 전쟁 중이라고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절대로 이 전략에 말려들지 말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