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취임 첫해인 1933년 6월 16일 그는 은행법 제정에 서명했다. 카터 글래스(C. Glass) 상원의원과 헨리 스티걸(H. Steagall) 하원의원이 공동 발의해 글래스-스티걸 법이라고 알려진 법이다. 이로써 상업은행은 여수신 업무만 하고 투자은행은 증권업무만 하도록 업무가 분리돼 상업은행이 고객의 예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상업은행들이 고객의 예금으로 무분별한 투기를 벌인 결과 1929년의 주가 폭락이 초래됐고 대공황이 시작됐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울러 이 법을 통해 은행 도산 시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설립됐다.
이어 증권법(1933)을 통해 증권 거래에 대한 감독을 연방정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다음 해인 1934년엔 증권거래법을 제정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설립했다. 증권감독 전담 연방기구였다. 초대 회장에는 당시 증권업과 영화, 부동산업 등으로 미국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자 민주당 후원자였던 조지프 케네디를 선임했다. 바로 J.F.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다.
이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들어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미국이 옛소련 붕괴 이후 유일무이한 강국이 되면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독주가 시작됐다. 1995년엔 GATT를 대신하는 새로운 무역 질서인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농산물과 서비스(금융)가 무역규범에 포함됨으로써 미국은 월가의 금융산업을 전 세계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월가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신호탄이었다. 이 무렵 미국 정부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은행과 증권의 겸업이 필수적이라며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무효화를 선언했고, 결국 1999년 공식 폐기했다. 그 후의 결과는 뻔했다. 극단적 효율과 시장 만능주의인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한 결과 1대 99로 표현되는 극심한 소득불균형이 생겨났고, 급기야 2008년 금융위기까지 초래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는 운동도 생겨났다. 7년이 지난 2016년에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지난달 28일 폐막된 미국 민주당 전국대회는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출정식이었지만 하나의 반환점이었다. 바로 민주당 정강 2016에는 월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전면적인 투쟁 선언이 담겨 있다.
“극심한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미국인들과 미국 경제에 나쁘다고 믿는다. 현시점에서 상위 0.1%가 전체 미국인 소득의 90% 가까이 가져간다.” “우리는 공정 경제를 위해 월가의 탐욕과 방종에 맞서 싸울 것이다. 월가는 위험한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거대한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과도한 투기와 빈번한 거래를 막기 위해 월가에 금융거래세(financial transaction tax)를 부과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은행들은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현대판 글래스-스티걸 법안 제정과, 경제의 안정에 위험을 초래하는 대마불사식의 초대형 금융회사의 해체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월가와 연방정부 간의 회전문 인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뉴욕 맨해튼을 휩쓴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단체가 내건 플래카드나 사회주의 정당이 내건 공약을 연상케 한다. 월가의 탐욕을 방치하고 시장 만능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신봉한 결과 극심한 소득 및 부의 불균등이 발생했고, 2008년의 금융위기도 초래한 만큼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실상 월가 자본주의의 종식 선언이다. 아직 정강이라고는 하지만 집권당이자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사실상의 대선 공약인 만큼 그 의미는 각별하다. 사실상의 섀도캐비넛이 주도한 것으로 선거용 공약이 결코 아니며, 민주당 집권 시 정책으로 반영될 게 확실하다.
앞으로 정책으로 반영될 경우 월가와 미국 경제 제도는 물론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수 있는 획기적이고 전향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의 틀을 바꿔 수정자본주의라고 명명했듯이 월가 자본주의의 종식 선언이 미국 경제나 자본주의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게 분명하다. 이는 가야 할 방향을 상실한 자본주의의 앞날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미국은 스스로 주도했고 전파했던 경제 모델의 폐기를 선언하고,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성장 모델을 버리지 못해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한국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