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지성주의를 반(反)하려면

입력 2016-07-0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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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기획취재팀장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놀랍게도 죽은 줄 알았던 단어와 개념들이 되살아나 망령처럼 떠돌았다. 그중 대표적인 건 ‘빨갱이’란 단어였다. 의견 일치가 되지 않거나 현 정부에 반대되는 입장만 보여도 이 꼬리표가 붙었다. 놀라웠다.

‘편 가르기’는 위험할 만큼 단순하고 유용한 정치 및 통치 도구다. 그러나 그것이 먹혀들기 위해선 사회 전체에 촘촘하게 분노와 혐오, 음모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침 전 세계 경제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에 진입 중이다. ‘나눌 과실’이 적어졌고, 이는 상대를 없애야 혹은 제쳐야 내가 먹고 존재할 수 있다는 조바심과 맹신의 문화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편 가르기’를 지나 적극적인 공격과 배격까지도 합리화되고 마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예상치도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부상하고, 영국인들도 “과연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냐(What we have done)”고 부르짖게 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오스트리아나 폴란드, 헝가리 등 유럽은 물론, 좌파의 대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남미에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 ‘지성의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먹고사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난민)은 증오의 대상이지 분담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등이 그 적나라한 예다.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나 민족주의(ethnism)가 과도하게 판을 치며 속죄양을 만들어낸 경우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나 나이젤 패라지, 보리스 존슨에게서는 모두 ‘같은 얼굴’이 보인다.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는 최근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우리는 왜 퇴행하고 있는가’라는 책을 엮어냈다. ‘하류지향’이나 ‘스승은 있다’ 같은 책으로 일본 사회를 비판해 온 우치다 다쓰루는 이번엔 자신과 문제의식이 같은 사람들을 저자로 꾸려 사회 전체를 진단하는 책을 엮어냈다. 그러나 이 책은 비단 일본에 국한돼 읽히지 않는다. 앞서 거론한 전 세계적인 흐름이 거의 이 책에 담긴 ‘반지성주의’로 설명된다.

반지성은 무식과 무지가 아니다. 타인이나 다른 의견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외곬인 지적 정열’이다. 유럽은 자신들도 먹고살기 힘든데 밀려오는 이민자가 두렵다. 일자리와 복지의 기회를 뺏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엄하게 보였던 엘리트들도 도통 믿을 수 없어졌다. 편을 갈라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을 쫓아내고 몰아내겠다는 막말 선동꾼이 더 믿음직하다. 반지성주의는 이렇게 ‘미래가 없다’는 커다란 대가와 맞바꿀 때 손에 넣을 수 있으며 법 외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책은 전한다. 당연히 편협한 주장이다. 또한 반지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검증받을지에 대한 관심은 조금도 없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것을 ‘무시간성’이라고 설명한다.

저자 중 한 사람인 시라이 사토시(白井聰)는 반지성주의는 적극적인 공격의 원리라고 본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나타난 반테러 전쟁은 기독교 원리주의와 내셔널리즘의 결합체로서의 반지성주의를 촉발했고, 일본 역시 가족국가로 회귀하려는 퇴행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전 세계를 망령처럼 떠도는 반지성주의를 극복할 대안이 있을까. 책에서도 진단 이후의 대안 모색은 없다. 그것은 아마도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매카시즘이 그랬고 반유대주의가 그랬다.

물론 ‘피해자 의식’이나 ‘타자에 대한 공격성’이 잘못됐다고 깨우쳐줄 ‘어른’ 같은 존재는 필요하지 않나 싶다. 독일이 적어도 철저한 반성을 해왔고 이로 인해 재건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여기엔 ‘어른 정치가’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과 같은 이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줄 존재만 있더래도’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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