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웬만한 국제정치학 교과서라면 어디에나 실린 이 구절을 ‘뻔한 소리’로 일소에 부쳤던 이 대목이 수십 년 지나 새삼 떠오름은 당시 모겐소의 주장이 지금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는 남중국해 분규를 미리 내다본 영험한 진단으로 와 닿기 때문입니다. 모겐소의 네 가지 평가기준 가운데서도 특히 ‘자원’이 제일 신경 쓰이는 대목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중이 지금 남중국해 해상에서 준전시에 방불한 대치와 알력을 되풀이해온 것은 이 해역이 자국의 영해임을 주장하는 중국이나, 이에 맞서 국제법상으로 보장된 공해상의 무해통행(無害通行·Innocent Passage) 원칙을 고집하는 미국 주장과는 사실상 무관합니다. ‘영해’나 ‘무해통행권’의 주장은 (평시)국제법에나 통용될, 양측의 한갓 명분 쌓기에 불과할 뿐 대결의 핵심은 단 하나, 이 해역에 매장된 원유와 천연가스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에 쏠려 있습니다.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는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6개국에 이릅니다. 이 해역에는 난사(南沙·Spratlys), 시사(西沙·Paracels), 중사(中沙·Macclesfield Bank), 둥사(東沙·Pratas) 등 4개 군도가 있으며 면적은 350만㎢. 그곳 해상(海床)에 약 280억~300억 톤의 원유와 7500㎢ 면적에 190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말라카ㆍ싱가포르 해협에서 대만해협까지가 포함되기 때문에 전 세계 해양 물류의 절반과 원유 수송량의 60% 이상이 이 바다를 지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지리상으로 이 해역의 원유나 천연가스에 대해 연고권을 주장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중국이 이를 독식하는 것만은 좌시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이 해역과 최근접거리인 필리핀과 미국 간의 공동방위조약을 무기로 이 해역이 사실상의 필리핀 영해임을 강변, 중국에 대한 간섭과 제재를 펼쳐왔습니다. 지난달 이 해역을 무대로 펼쳐진 미·필리핀 해상기동훈련에 인도까지 합세한 것 역시 이 해역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봉쇄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미·중 분쟁이 가장 예각으로 첨예한 전초 수역은 남중국해상의 난사군도(南沙群島ㆍSpratly Islands) 일대입니다. 남중국해 남단의 해역으로 약 108개 산호초가 곳곳에 널려 있으나 해상 총 면적이라야 2.1㎢에 불과하고, 섬의 높이는 평균 3~4m이지만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인 요충으로, 1933~1939년에는 프랑스가 영유했다가 일본령으로 바뀐 후 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중국에 반환되었습니다.
그 뒤 타이완 중국, 베트남, 필리핀이 차례로 영유권을 주장했고, 1970년대에 남부 베트남이 점령했다가 지금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이 현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과 아세안(동남아연합국가) 모두의 영유권이 중첩되는지라 일단 전단(戰端)만 터지면 곧바로 ‘발칸화(化)’할 위험이 상존하는 해역입니다. 영유권을 대놓고 주장하는 섬만 총 44개(베트남 25, 필리핀 8, 중국 7, 말레이시아 3, 대만 1). 최근접 국가 필리핀이 미국의 강변에 동조, 중국을 헤이그 소재 유엔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고, 그 판결이 이르면 7월 내로 내려질 것으로 보이나, 그 어떤 판결에도 중국이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임을 공식 천명한 데서 문제는 더욱 꼬이고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의 집계에 따르면 이 해역의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10위권 산유국인 멕시코 수준에 달합니다. 또 6개 관련국 모두가 이미 채굴을 서둘러 2011년 한 해 32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와 하루 평균 120만 배럴의 원유를 캐냈으며, 이 양은 유전의 경우 미 노스다코다주 산유량에, 천연가스의 경우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산 생산량에 맞먹는 수치였습니다.
이 해역이 새삼 세계적 뉴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은 중국이 ‘피어리 크로스 리프’(Piery Cross Reef·永暑礁) 등 7개의 산호초를 2년 전부터 인공 섬으로 확대 개축, 그곳에 항만과 농구코트를 짓고, 활주로까지 건설하면서 전폭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군사시설로 바뀌고부터입니다. 6월 22일자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 보도대로면 중국은 7개의 인공 섬 신축이 끝나는 대로 중국 공군 주력 기종인 J-11 편대를 현지에 주둔시킬 예정입니다. 인공 섬의 실황을 전하기 위해 시사주간지 타임이 6월 초 특파원을 현지에 파견, 2년 사이에 현격하게 바뀐 섬을 공중 촬영, ‘21세기 파워 투쟁의 심장부’ 제하의 커버스토리로 다뤄 이곳에 쏠린 세계의 관심을 대변했습니다.
달랑 두 개의 바위섬에 불과했던 피어리 크로스 산호초가 2년 사이 장장 680에이커 크기의 해상 군사시설로 바뀌자 이에 뒤질세라 미사일을 장착한 미 구축함이 지난 5월 10일 공해상의 자유통행권을 표방, 인공 섬 주위로 급거 진항(進航)하면서 미·중 사이가 준전시에 준할 비상시국으로 바뀐 것입니다. 지난달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의 핵심 안건 역시 사태의 악화를 막으려는 두 강대국의 외교 노력이었습니다만, 두 나라의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날로 심화되고 있는 미·중 간 일촉즉발의 위기에 관해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30일자 ‘남중국해상에서 벌인 미·중 섀도 복싱(Shadow Boxing)’ 제하의 머리기사를 통해 긴박감 넘치는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신문의 헬렌 쿠퍼 여기자가 남중국해를 순항 중인 미 순양함 챈슬러스빌호 함상에서 띄운 르포 기사(별도 박스)를 읽노라면 미·중 힘겨루기가 한갓 도상 연습이 아닌, 전 세계 이목이 쏠리는 초미의 뉴스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 해역을 둘러싼 잇단 보도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뉴스는 중국이 조만간 7개의 인공 섬에 20기의 원자로를 신설할 계획이라는 인도의 유력 신문 힌두스타임스의 최근 기사입니다. 이 신문의 베이징 주재 특파원이 중국 조선공사(CSIC) 리우 젱구오 사장의 언급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원자로에서 얻어질 동력은 등대 건설과 해수의 담수화 작업, 방어용 무기 제조와 공항 및 항만 건설에 쓰일 것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습니다만, 가장 요긴한 용도로 석유 탐사용 시추선에 쓰일 전력이 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습니다.
이 보도에 관해 중국외무부 대변인은 단순한 보도라며 구체적인 코멘트를 피했습니다만, 실무 당국자의 언급인 만큼 귀추가 주목됩니다. 남중국해상에서 벌이는 미·중 자원 분규가 드디어 핵으로까지 번져 모겐소 시절에 부재하던, 막바지 단계로 비화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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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의 긴박한 현장보도
“난사군도를 항해 중인 챈슬러스빌호의 레이더에 중국 해군 프리깃함에서 출격한 헬리콥터가 잡힙니다. 미 군함 함교에 오른 중국어 통역병이 중국 헬기와의 교신을 시도, ‘여기는 미 군함 챈슬러스빌호! 귀하의 주파수를 121.5나 243에 맞추라!’ -무응답. 뒤이어 6마일 가까이 모습을 드러낸 중국 프리깃함에서 띄운 라디오 발신이 악센트 있는 영어로 입전됩니다. ‘미 해군 전함 62호 들으라. 여기는 중국 전함 575!’ 양측 해군 사이의 ‘정교한 외교 댄스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함상의 기자는 이렇게 운치 있게 글을 엮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중국어 통역병을 제치고 챈슬러스빌호의 함장 랜쇼 대령이 직접 마이크를 쥐고 외칩니다. ‘중국전함 575호 들으라. 여기는 미 전함 62호. 안녕하신가?’ ‘미 전함 62호, 귀함의 발진지는 어딘가? 오버’ ‘우린 거기에 답하지 않는다, 그런 걸 또 묻지도 않는다. 항해를 즐길 뿐이다, 오버’ ‘미 전함 62호 들으라! 장거리 순항인가? 항해를 얼마 동안 계속할 건가?’ ‘여기는 미 전함 62호, 우리의 순항은 길지 않다.’ ‘미 전함 62호 들으라. 여기는 중국 전함 575호. 우리는 내일까지 귀함과 동행할 것이다. 오버’ 다음 날 중국 프리깃함의 미행은 중국 구축함으로 바뀌어, 챈슬러스빌호가 남중국해를 벗어날 때까지 이틀간 더 계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