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량이 비슷하면 복 터진 사람이 우승한다. 행운이 따라야 한다. 한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우승하는 선수를 보면 기량이 고만고만하다. 그들은 늘 우승권에서 맴 돈다. 물론 장타력을 갖춘 박성현(23·넵스)은 조금 특별하긴 하지만.
아마추어 강자 성은정(17·금호중앙여고)의 이야기를 해보자.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척 아쉬운 경기였다. 코스공략법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클럽선택에 대해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꼬리를 문다.
26일 경기도 안산 대부도 아일랜드 리조트 골프코스(파72·6522야드)에서 끝난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총상금 7억원).
최종일 경기 18번 홀(파5·527야드). 성은정이 티샷을 할 때 최은우(21·볼빅)는 10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성은정과 한조를 이룬 이번 우승자 오지현(20·KB금융그룹)은 9언더파였다.
성은정은 13언더파로 2위에 3타나 앞섰다. 더블보기만 해도 우승이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성은정의 티샷은 왼쪽으로 휘더니 OB(아웃 오브 바운스)가 났다. 잠정구를 친 볼이 다시 왼쪽 러프로 갔다. 비거리는 엄청 나갔다. 자신의 말대로 280야드 이상을 훌쩍 쳐내는 성은정이다. 그는 3라운드에서 여자프로 장타자 박성현에게 드라이버 거리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많이 나갈 때도 많았다.
그런데 러프에서 유틸리드를 잡았다. 스탠스는 앞발이 높은 지형. 이럴 때 대개 왼쪽으로 볼이 흐른다. 이를 감안한 것일까. 엉뚱하게 4번째 샷한 볼은 가서는 절대로 안 될 오른쪽 언덕으로 밀렸다. 러프가 발목까지 빠지는 패스큐 잔디, 소위 수염 풀이었다. 1벌 타를 먹는 대신에 그대로 쳤다. 하지만 파워 히터인 남자도 탈출하기가 쉽지 않은 잔디였다. 다섯 번째 친 볼은 그린 앞 러프에 떨어졌다. 여섯 번째 친 볼은 핀을 훌쩍 지났다. 넣으면 더블보기로 우승. 그러나 얄밉게도 첫 퍼팅은 홀을 벗어났다. 트리플보기로 연장전에 나갔다. 그리고 파를 잡아 졌다. 오지현이 연장을 나가기 전에도 바로 버디를 잡아 연장으로 끌고 간 그린의 같은 그 자리에서 버디 퍼팅이 빛을 발했다.
먼저 연장에 나기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성은정은 장타자다. 안전하게 3온만 시키면 우승한다. 4온, 5온을 시키고 2퍼팅으로 끝내도 이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드라이버를 잡았을까 하는 것이다. 아직 17살 여고생에게 무리였을까. OB를 내고도 다시 드라이버를 잡아 볼은 다시 왼쪽 러프로 날아갔다. 어차피 4온이 어렵다면 안전하게 아이언으로 페어웨이를 선택한 뒤 5온을 시켜 2퍼팅으로 끝냈어야 한다. 그런데 무리하게 유틸리티를 잡았다. 만일 캐디와 선수가 처음부터 작전을 잘 짰다면 우승은 그냥 손에 들어왔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무리하게 유틸리티를 선택했을까 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돌아가 보자. 연장전에 들어가기 전에 3타차라면 장타자 특성을 살려 클럽 중 제일 잘 맞는다는 페어웨이 우드를 꺼내 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아니면 롱아이언으로 티샷을 했어도 충분히 3온이 됐을 것이다. 527야드지만 내리막이어서 실제거리는 500야드밖에 안됐을 텐데. 200야드 이내로 두 번 치고 100야드 남기고 핀에 붙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게 골프지’라고 말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더욱 아쉬운 것은 연장전에 들어가서도 드라이버를 잡아 러프에 빠진 것이다. 골프에서 실수는 반복해서 온다고 했다. 세컨드 샷한 볼도 러프로 갔다. 당연히 세 번째 샷도 핀을 훌쩍 지나갔다. 버디퍼팅을 정말 잘했지만 홀을 살짝 비켜갔다. 클럽선택의 작전을 한 번 바꿨으면 어땠을까 싶다.
175cm의 성은정은 장타력에다 두둑한 베짱, 그리고 정확한 아이언 샷이 강점이다. 퍼팅도 좋다. 그는 내년 10월 이후가 돼야 프로에 데뷔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원하는 아마추어시절 프로대회 우승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겨 놓고 있다. 그만큼 기량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2011년 초등학교 6학년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장배 여자아마골프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성은정은 지난해 세계 골프 꿈나무들의 등용문인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제까지 프로대회에서 여자아마추어가 프로를 제치고 우승한 것은 24번이다.
그가 2012년 김효주(21·롯데)가 롯데마트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이후 4년째 대가 끊긴 KLPGA투어 아마추어 우승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서운한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 선수는 자신의 ‘뼈아픈’ 실수로 인해 슬럼프에 자칫 장기간 슬럼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우승을 놓친 일로 성은정이 상처를 받지 않고 자신의 골프를 한 단계 성숙한 기회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골프대기자 golfahn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