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실수로 군인 사망…가천대 병원은 조직적 증거 은폐

입력 2016-06-20 12:33 수정 2016-06-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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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DB(길병원))
(이투데이DB(길병원))

인천 가천대 길병원이 간호사의 투약실수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의료진의 실수로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던 20대 군인이 사망했다.

20일 관련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인천 가천대 길병원 간호사 A(26·여)씨는 지난해 3월 손가락 골절 접합수술을 받고 회복을 위해 병동으로 온 육군 B(20)일병에게 주사를 놨다.

의사가 처방전에 쓴 약물은 궤양방지용 ‘모틴’과 구토를 막는 ‘나제아’였다. 그러나 A씨는 마취 때 기도삽관을 위해 사용하는 근육이완제인 ‘베카론’을 잘못 투약했다. 주사를 맞기 2분 전까지 친구들과 휴대전화로 카카오톡을 주고받던 B일병은 투약 후 3분 뒤 심정지 증상을 보였다.

B일병은 같은 날 오후 2시 30분께 점심을 먹고 병실을 찾은 누나에게 뒤늦게 발견됐다. 그러나 곧 의식불명에 빠졌고 한 달여 만인 지난해 4월 23일 저산소성 뇌 손상 등으로 숨졌다.

인천지법 형사5단독 김종석 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간호사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이날 밝혔다.

A씨는 수사기관 조사에서 “주치의가 지시한 약물을 정상적으로 투여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경찰이 신청한 A씨의 구속영장도 기각된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B일병에게 베카론을 투약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음에도 수시로 비우게 돼 있는 간호사의 카트에서 사고 후 베카론 병이 발견된 점 등 정황증거와 간접증거를 토대로 검찰 측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간호사로서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잘 살피고 처방전에 따른 약물을 정확하게 투약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며 “정확한 확인 없이 약물을 투약해 피해자를 숨지게 한 중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가천대 길병원은 사고 직후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아왔다. 이 같은 의혹은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사고 당일 병원 측은 의료사고를 대처하는 적정진료관리본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었다. 병원 부원장, 담당 의사, 법무팀장 등도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는 “병동에서 근육이완제가 발견됐다. 병동에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오갔다.

사고 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의료사고가 명백하다. 투약사고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병원 측은 사고 후 B일병이 숨진 병동에 설치된 비치약품함 안에서 베카론 3병을 빼내고 고위험약물의 위치도 바꿨다.

병원 직원들은 이 약물을 병원 내 약국에 반환한 것처럼 ‘약품비품 청구서와 수령증’을 허위로 작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약국이 아닌 적정진료관리본부로 넘어갔다.

병원 적정진료관리본부장은 지난해 5월 수사기관 조사에서 “베카론을 잘못 투약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병동에서 보관하던 베카론 병을 두고 병원 관계자들이 한 일련의 조치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사고 당시 병동에 해당 약물이 어느 정도 보관돼 있었는지 등 판단이 불분명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병원의 전반적인 약품관리 상황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그 과실도 무시할 수 없다”며 “언제든 환자에게 약물이 잘못 투약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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