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지주가 부실 여신을 한번에 털어내기 위해 준비 중인 ‘빅배스(Big Bath)’가 난항을 겪고 있다. 빅배스는 경영진 교체 이후 등의 시기에 잠재 부실을 모두 털어내는 회계기법을 말하며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이 임기 중 단행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금융지주의 실제 주인인 농협중앙회가 협조할 뜻이 없어 사실상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 간 배당금 지급 문제에선 이견을 좁혔지만 명칭사용료 지급 문제와 관련해서는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명칭사용료란 농협법에 따라 농협의 자회사가 농업인 지원을 위해 농협중앙회에 분기마다 납부하는 일종의 브랜드 사용료다. 대부분의 수익이 농협은행에서 나오는 만큼 명칭사용료도 은행에서 가장 많이 지급한다.
영업수익의 2.5%까지 부과할 수 있어 당기순이익을 넘어서기도 한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1763억원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는데 명칭사용료는 이보다 큰 3051억원을 지급했다. 최근 3년간 명칭사용료로 지급한 금액은 1조원에 달한다.
저금리와 기업 부실로 수익구조가 빠듯한 상황에서 명칭사용료 지출이 매년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다 보니 충당금을 쌓아 잠재 부실을 처리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명칭사용료 조정은 농협금융의 숙원이지만 키를 쥔 중앙회 쪽은 복지부동이다.
법에 사용료 부과 권한이 명시된 데다 회원과 조합원을 상대로 한 지원사업에 사용되기 때문에 함부로 줄일 수 없다는 논리다.
특히 빅배스가 이뤄질 경우 금융지주의 배당금과 명칭사용료로 적자를 메우는 지역농협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때문에 농협중앙회에선 명칭사용료 축소에 대해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농협은행이 중앙회에 명칭사용료를 지급할 경우 부실을 처리할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게 된다.
농협은행은 조선·해운사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5조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특히 2분기 쌓아야 하는 대손충당금만 해도 1조원을 넘겨 적자가 불가피하다.
농협은행은 매분기 충당금 문제로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 이를 한번에 털어내는 작업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으로서는 감독권한이 농협금융과 농협은행 등 금융계열사에만 미치기 때문에 이견을 조율한 마땅한 수단도 없어 속으로 애만 태우고 있다.
결국 최근 농협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마친 금융감독원은 명칭사용료 등 합리화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향후 기업대출 부실 확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여신심사 시스템 개선책을 마련해 제출하라는 요구만을 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