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회사의 감사인이 부실 감사를 했더라도 과징금을 부과하기 어렵게 됐다. 감사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 근거를 외부감사법에 마련하려고 했던 금융당국의 의지가 규제개혁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1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회계감사 기준을 위반한 감사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 조항을 신설하는 안건에 ‘철회권고’를 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금융위는 분식회계가 발생한 회사에 대해 최대 20억원, 그 감사인에 대해 보수의 3배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조항을 신설할 계획이었으나 회사에 대한 부분만 승인된 것이다.
규개위는 외부감사법상 감사인에 대한 과징금이 공인회계사법상 과징금 제도와 중복된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의견을 밝힌 법제처에서도 외부감사법상 과징금이 공인회계사법 과징금 제도의 특별법 성격을 지닌다고 봤다.
그러나 공인회계사법 제52조의2에서 과징금은 업무정지나 직무정지 처분에 갈음해 최대 5억원까지만 부과할 수 있게 돼 있다. 업무·직무정지 처분을 받더라도 최대 5억원만 내면 영업을 지속할 수 있어 제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2013년 과징금 상한을 20억원으로 인상하는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도 했지만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429조에도 감사인에게 최대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하지만 증권신고서상 중요사실을 거짓 기재하거나 누락했을 때만 해당한다. 외부에서 자금 조달을 하지 않거나 ‘가족기업’으로 증권 발행이 없는 비상장법인에서는 부실감사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감법상 감사인에 대한 과징금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공인회계사법 내용과 중복되지 않는다고 규개위에 취지를 설명했지만 철회 권고를 받았다”며 “증권신고서를 발행하지 않는 회사에서 분식회계가 발생하더라도 감사인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제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행정제재인 과징금 근거는 원칙적으로 공인회계사법이 아니라 외감법에 두는 것이 적절한 형태로 보인다”며 “회계법인 대표 제재는 강화한 상황에서 금전제재엔 아직 공백이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