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그를 새누리당 차기 대선후보로 영입하려는 친박(친박근혜)계의 불안한 동거가 사실상 시작됐다. 반 총장이 방한 첫날인 25일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 1일 한국시민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 결심할 것”이라며 대권도전을 시사하면서부터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2월 13일 당시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예방을 받고 “한나라당도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은 야당이었고, 반 총장은 열린우리당이 집권한 참여정부의 소속이었다.
반 총장도 올 초 박 대통령과의 신년 전화통화에서 한일 위안부 협상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께서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졸속 협상’이라는 야당의 비판에도 성원을 보냈다.
이처럼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궁합이 잘 맞는 듯하지만, 추구하는 노선이나 정책은 다소 상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의 동거를 불안하게 보는 시각도 이런 측면이 크다.
당장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대북 정책이 충돌한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지휘하며 확고한 대북정책의 틀을 만들어왔다. 최근 북한의 잇단 도발로 ‘선 제재, 후 대화’ 원칙을 고수 중이다.
반면, 반 총장은 26일 제주포럼 연설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향한 길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며 대화 중심의 참여정부 기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반 총장은 2005년 외교부 장관을 지내면서 참여정부와 대북정책을 두고 충돌한 미국기업연구소(AEI)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선임연구원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감사까지 진행한 바 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동거가 지속되려면 노선이 같아야 하는데,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반 총장도 실제 대선에 출마하려면 조직과 자금력 등 안정적 지원을 위해 결국 정당을 택하겠지만, 지금처럼 간만 보는 애매한 자세로 봤을 때 어느 당을 택할지는 알 수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