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2시께 율곡로 현대상선 본사 1층에는 평소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정장 차림의 경호원이 로비를 지키고, 기자 서너명이 기자실이 아닌 본사 로비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현대상선은 이날 해외 컨테이너선사 3곳을 직접 한국으로 초청해 용선료 인하 관련 최후의 담판을 벌였다. 주요 컨테이너선 5개사는 현대상선 전체 용선료의 7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내용에 따라 현대상선의 운명이 결정된다.
정적을 깬 것은 마크 워커 미국 밀스타인 법률사무소 변호사였다.
그가 동료 변호사와 함께 1층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협상장으로 올라가는 것이 목격됐다.
2시부터 4시까지 계획됐던 협상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5시가 지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협상이 길어지자 김홍인 현대상선 상무가 1층으로 내려와 “용선료 협상이 밤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오후 6시께 현대상선 관계자가 회의가 일단 마무리됐음을 알렸다.
그 시각 지하 주차장에서는 검은색 세단 5대가 서관으로 이어지는 입구 앞에서 일렬로 대기하고 있었다. 5분여 정도가 지나자 협상을 마친 해외 선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나오스 측이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바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다른 선주들도 차례로 나왔다. 기자가 “협상은 어땠나? 용선료 인하에 동의하나?”라고 묻자 고개를 저으며 “노 코멘트”라고 답했다.
해외 선주들이 먼저 사라진 뒤, 정용석 산은 부행장이 나타났다. 기자가 정 부행장에게 달려가 협상 분위기를 묻자 “용선료 협상이 어렵게 됐다”며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오후 7시~8시 산은 본관 입구는 굳게 닫혔다. 로비 불빛도 꺼졌지만 5층에 있는 기업구조조정2실에서는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협상 자리에 직접 참석했던 이종철 기업구조조정2실장은 바쁘게 움직였고, 사원과 대리급들 역시 퇴근을 못 하고 서류를 훑고 있었다. 산은 책임자와 실무자에게 수차례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이들에게 ‘(답변을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온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정부는 용선료 협상 실패시 현대상선은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