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닛산자동차가 연비 데이터 조작 파문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미쓰비시자동차를 손에 넣으면서 ‘글로벌 판매 1000만대’ 클럽을 넘볼 수 있게 됐다. 경차 시장에서 존재감 있는 미쓰비시를 인수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발판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쓰비시 인수를 공식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닛산 카를로스 곤 최고경영자(CEO)는 2010년 다임러와의 자본 제휴를 맺은 이후 가장 고무된 표정을 보였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4일 전했다.
그동안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글로벌 판매 1000만 대 클럽은 도요타자동차와 독일 폭스바겐, 두 회사의 전유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닛산은 전기자동차 ‘리프’로 전기차 시장에선 선구적인 입장이었으나 미국 테슬라모터스가 최근 내놓은 보급형 전기차 ‘모델3’가 사전 예약을 개시한 지 1주일 만에 30만대를 넘어서면서 전기차 시장의 판세가 순식간에 반전됐다. 이런 가운데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판매하는 신흥국을 겨냥한 전략차 ‘닷슨’ 시리즈 판매가 주춤하면서 닛산은 회심의 일격이 절실하던 참이다.
닛산이 연비 데이터 조작으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미쓰비시 인수를 자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에 맞서 라인업을 새로 하는 것보다는 이미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인지도 높은 미쓰비시차와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닛산이 미쓰비시차와 제휴를 맺음으로써 글로벌 판매대수는 100만 대가 단번에 늘어, 닛산·르노 진영의 세계 판매 대수는 950만 대가 넘는다고 추산했다. 이는 세계 판매 수위를 다투는 도요타나 폭스바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1000만 대 클럽’ 진입도 막연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여기다 강판이나 수지 제품 등을 주문할 때도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건 물론, 부품을 통일하면 추가적인 원가 절감도 기대된다.
그러나 현재 세계 자동차 업계의 경쟁의 핵심은 규모 확대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자율주행차 등의 분야에서 미국 구글 애플 등 정보기술(IT) 업계의 강자들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개발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가 이달 초 구글과 손잡은 것도 이같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스코 오사무 미쓰비시 회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실리콘밸리 거점에서 전해들은 정보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자동차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 현장에도 밀려오는 디지털화의 물결이 자동차 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다.”고 덧붙였다.
IT업계뿐 아니라 부품업계에서도 전통적인 자동차 업계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캐나다 부품 업체인 매그너인터내셔널은 닛산 차량을 위탁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부품 업체로서 쌓은 기술을 발판삼아 독자 브랜드로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겠단 계획도 갖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 (GM)의 트럭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미국 안드로이드 인더스트리즈도 매그너와 같은 계획이다.
신문은 생산 현장에서 ‘카이젠’ 등을 통해 부가가치의 원천을 찾아온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업계의 강점이 약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경쟁의 ‘질’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닛산과 미쓰비시 연합도 새로운 업계 재편에서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