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고 친 남편이 아내에게 “돈부터 내놔라”?

입력 2016-05-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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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자본시장부 시장전문기자

“사고 났어. 해결해야 하니 돈 있지? 내놔!”

밖에서 사고 친 남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내에게 덜컥 한다는 소리다. 아내라면 놀라며 “왜? 무슨 일인데”라고 따져 묻는 게 보통이다. 또 남편의 이 같은 행동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 “못살아~”하면서 면박부터 할 것이다.

과거 우리네 가정사에서 한 번쯤 있었을 법한 내용이다. 드라마 내용엔 없었지만 연초 인기를 누렸던 ‘응답하라 1988(응팔)’에서 덕선이 아버지(성동일)도 빚보증에 전 재산을 날리면서 아내(이일화)와 이같이 한판(?) 했을 게다.

남편 ‘정부’, 아내 ‘한국은행’으로 대입해보면 최근 ‘한국형 양적완화’ 논란이 꼭 이 같은 형국이다. 남편은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이미 무한책임과 같은 연대보증을 서고 있는 중이다. 또 이를 빌미로 최고재무책임자(CFO)도 파견하는 등 경영에도 관여해왔다.

남편이 내놓으라는 돈은 공돈이 아니다.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으로 결국 보라와 덕선이, 노을이에게도 희생을 강요하는 돈이다. 남편이 이번 사태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남편이 아내에게 손 벌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 그럴 때마다 명분도 거창했고 하나같이 시급을 다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만 보더라도 1997년 종금사 업무 정지 등에 따른 유동성 지원을, 2006년 신용회복 지원을, 2009년 은행자본확충펀드 지원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과 해운사 구조조정이 명분이다. 정부와 여당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국회를 거칠 만큼 여유가 없다”가 전부이다. 그간 뭘 했는지 아무 설명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아내는 남편의 완력에 또 한 번 굴할지 모른다. 다만 지금은 쌍팔년도가 아니다. 시대가 변해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고 커져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글 앞머리에서 말한 내용이 현 시점에서 드라마로 다시 방영된다면 그 장르는 이제 ‘막장’으로 분류될 법하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니 남편이 돈을 요구하고 아내가 돈을 내겠다고 하면 당장 막을 도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정부와 한은이 어떻게든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거치지 않는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책은행에 자본확충 방침을 확정하고 관계기관 간 태스크포스(TF)인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 회의를 시작했다. 이미 한은 발권력 동원을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여러 번 양보해 이를 인정한다 해도 지금의 방식엔 문제가 있다. 우선 TF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기획재정부는 제1차관이, 한은은 차관급 아래인 부총재보가 참석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사무처장이, 금감원도 부원장보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부행장이 각각 참석 중이다.

한은은 협의체에서 논의해 본 후 한은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TF 구성을 보면 이미 협의가 아니다. 가부장적 남편의 지시만 있을 뿐이다.

이를 반영하듯 첫 TF 회의 직후인 4일 점심,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TF 회의 참석자의 눈빛에선 평소의 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 야단을 맞고 나왔거나, 들린 가방에 숙제거리만 가득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은 독립성은 전임 이성태 총재의 언급처럼 한은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다. 보라와 덕선, 노을을 위함이다. 아무리 급해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

또 일부 이해관계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일이 반복돼서도 안 된다. 지금의 구조조정이 일부 기업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한은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거 금융권 지원도 수차례 기업에 돈이 흘러갔다는 점에서 도긴개긴인 셈이다.

응팔에서 보라와 덕선이 생일날 보라의 생일 케이크만 챙기자 덕선은 결국 “나는 왜? 맨날 뒷전이야”라며 울부짖는다. 조선과 해운사 외에도 또 다른 덕선이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음도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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