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에서 한 말이 있죠. ‘우리는 앞을 내다보고 점을 연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중에 회고하면서 연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각각의 점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 믿어야 한다’고요. 이 말을 믿게 됐습니다. 제가 겪었던 각각의 일들이 결국 지금의 자리에 저를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취임 100일을 넘긴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의 말이다. ‘여성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겠다’란 남다른 다짐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거의 모든 이력이 현재의 자신을 만든 것 같다고.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일하다 유학을 가 교육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막연하게 교육과 관련한 일을 하겠거니 생각했죠. 귀국해서 정규직으로 일하게 된 곳이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었습니다. 좀 다른 분야인가 했지만 아니었어요. 여성, 페미니즘은 사실 모든 교육에 묻어있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잘 교육받은 여성’이 사회에 나와 함정에 잘 빠집니다. 학교에서 배운 원칙과 규범이 사회에선 안 통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기는 좌절과 포기를 내가 나서서 풀어야겠다는 마음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연구원 시절 그런 의도로 연구를 시작해 만든 ‘작품’ 중 하나가 교육계의 유리천장에 대한 보고서였다. 여자 교사들이 고위직에 못 오르고 대학 교수 가운데 10%도 여성이 차지하고 있지 못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 이 보고서는 결국 여교수 채용 목표제를 도입토록 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대학들은 이제 직접 교육부에 여교수를 얼마나 채용하고 있는지 그 비율을 보고해야 한다. 둘째를 낳고 경력단절 여성이 됐던 경험을 기반으로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의 기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연구가 정책으로 현실에 도움이 될 때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양평원장은 다시 그가 ‘교육’에 힘써야 하는 자리다. 성 인지(Gender awareness), 즉 특정 성별에 불평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교육, 성희롱 고충상담원 등을 대상으로 한 폭력예방 교육이 주가 된다. 대중매체 모니터링도 강화했으며 여성역량 증진을 위한 본(BORN) 포럼도 운영 중이다.
“요즘 양성평등을 거론하면 남성들은 ‘여성들 지위 많이 올라가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 이렇게 말합니다.‘당신들이 보는 여성은 일부의 잘 나가는 여성들일 뿐’이라고요. 여전히 폭력과 피해에 고통받고 소외된 여성들이 더 많습니다. 이들에게 양성평등은 아주 먼 얘기일 뿐입니다.”
민 원장은 사회 시스템이 가족 친화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양성평등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법·제도만 앞서가도 안 된다. 사회인식을 바꾸는 일은 교육이 할 몫이다. 그래서 양평원이 짊어진 책임이 더 크다고 민 원장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