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철저한 조사와 함께 피해자 추가 접수 등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지시하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환경부는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관련 브리핑에서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살생물제(Biocide) 전반에 대한 관리체계 도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살생물제 사건이다. 미생물이나 해충을 죽이려고 사용한 제품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인 셈이다. 살생물제는 방충제, 소독제, 방부제 등을 말하며, 미국과 EU는 살생물제를 목록화하고,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까지 살생물질과 살생물제품을 전수조사하고, 미국과 EU와 같이 이에 대해 단계적으로 위해성 평가를 하기로 했다.
특히, '살생물제 허가제'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다. 허가제가 도입되면 허가 가능 물질만 제품으로 제조 가능하며, 비허용 물질로 만든 제품은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된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비염이나 기관지염, 편도염 등 경미한 증상과 폐 이외의 장기에 대해 다른 질환을 유발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앞서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2013~2015년 530명의 피해자 접수를 받았다. 이 중 '폐 섬유화'가 확인된 221명에 대해서만 의료비와 장례비 지원 대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폐렴과 비염 등이 나타난 309명은 3~4등급으로 분류해 피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는 이번 사건 피해자 일부에게 37억5000만원을 지급하고, 2014년 12월부터 사용제품 제조ㆍ판매사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환경부는 피해자 조사 판정을 맡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조사ㆍ판정위원회에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가습기살균제 폐 이외 질환 검토 소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주요성분에 대한 독성 연구와 역학조사를 추가로 실시하고, 피해자들의 의료기록을 통해 비염이나 기관지염부터 심혈관 질환까지 다양한 질환에 대한 판정 기준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조사ㆍ판정 기준이 마련되면 피해 판정을 거쳐 추가 지원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 지난해 12월말까지 신청한 752명을 대상으로 피해자 조사와 판정을 진행 중이다. 또한, 지난달 25일부터 4차 피해 신청 접수를 시작했고 4분기부터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호중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관은 "서울아산병원측과 협의를 거쳐 3차 신청자 조사ㆍ판정을 2017년까지 완료할 것"이라며 "국립의료원 등을 조사기관으로 추가해 4차 신청자 조사를 올해 4분기 착수해 2017년 말까지 완료 목표로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카펫 항균제 등으로 유해성 심사를 받은 화학물질(PGH, PHMG 등)을 가습기 내 세균과 물때 방지를 위한 살균제로 제조ㆍ판매하면서 촉발됐다.
의료기관에서 급성호흡부전 등 원인미상 폐손상환자 발생이 계속되자 2011년 4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을 했다.
이어 질병관리본부에서 역학조사와 동물실험을 거쳐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 환자 발생의 원인임을 확인했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는 관리 대상으로 지정되지 않아 일정 안정규격만 맞추면 출시가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인허가 과정에서 정부 측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호중 환경보건정책관은 환경부의 조치가 미흡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 판정과 조사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왔다"며 "화학물질 중 살성분제를 전수 조사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