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여러 가지 기업지배구조를 실험해 왔다. 그 실험들은 늘 ‘바람직한’,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제도화되었다. IMF금융위기가 오자 기업지배구조가 전근대적이어서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긴급수술을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위시한 외국에서 유래한 제도들이 다양하게 도입됐다.
바야흐로 지난 20년 동안 우리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우수하다고 하는 기업지배구조 제도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험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더 강한 약을, 더 많은 용량의 약을 처방해왔다. 그 결정판의 하나가 2015년 입법된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라고 생각한다. 법명에서 벌써 지배구조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이 법은 지난 20년간 이어진 지배구조논의를 결집한 법이다.
소프트웨어의 코드를 쓰는 일과 법조문을 쓰는 일은 유사한 면이 있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업그레이드하면 보통은 디버깅(debugging)이 돼 문제점이 개선된다. 그런데, 지배구조를 사전적으로 ‘바람직하다’, ‘좋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은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이 보기에 아름다운 숲을 가꾸는 것이 사실은 숲을 망치는 것처럼 누군가가 보기에 바람직하고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기업을 망치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숲의 천이(遷移)가 그 숲의 시간이 지나면서, 기후가 바뀌면서,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법은 기업이 자신의 몸에 가장 맞는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를 찾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제도가 기업의 성장이나 발전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의 역할이다. 기업가의 의식, 주변 환경, 주력 산업 등 기업이라는 숲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에 맞춰야 한다.
법의 역할을 먼저 가지치기를 하다가 나무를 분재로 만드는 것으로 보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유방암의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유방을 사전에 적출하는 것과 같은 외과수술은 기업지배구조 논의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잘라낸다’는 프로크라테스의 침대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눈에 보기에 아름다운 성형수술을 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논의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