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미의 고공비행] 알파고 ‘열풍’, 어김없는 ‘뒷북 대한민국’

입력 2016-03-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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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오랜기간 차근차근 정책을 준비하는 정부의 모습은 여전히 어색하다. 하지만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초고속으로 관련 정책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익숙하기만 하다. 최근 이세돌-알파고 간 대국을 통해 떠오른 인공지능(AI)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 역시 예상을 1%도 비켜가지 않았다.

인공지능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산업통상자원부가 갑자기 ‘AI’라는 용어를 남용하기 시작했다. 산업부는 지난 14일 이세돌-알파고 간 대국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인공지능 응용·산업화’라는 간담회를 열고 “올해 인공지능 관련 기술개발 자금 규모를 130억원(지난해)에서 2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AI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달 들어 AI전담팀을 만들었다. 다음달 중으로 AI 투자, 기술 등 관련 로드맵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본격적으로 이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정부 부처들이 갑자기 AI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AI가 이슈가 되자 뒤늦게 관심이 많아졌다. 짧은 기간 내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이같은 움직임들은 정부가 “우리는 AI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라고 광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만 해도 십수년 전부터 꾸준히 투자를 해왔다. AI 분야는 수십년에 걸쳐 연구가 이뤄져야 할 만큼 정교하고 고급 기술력을 요하는 분야이다.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면 하루아침에 짠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다.

정부가 발표한 투자금액도 민망하다. 십수년 전부터 조 단위로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AI 분야에 집중 투자를 감행하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과 중국도 이 분야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실제 AI 분야에 대한 점유율은 미국이 30%, 중국 30%, 일본과 유럽이 30% 등으로 대한민국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관련 정책 수행을 위해 우리나라 대기업들을 대거 참여시키겠다고 한다. 물론 기업들이 AI에 관심을 가지고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구글, IBM, MS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일찌감치 AI 연구에 뛰어들어 어마어마한 투자를 오랜기간 해오고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이 많게는 1000억원 대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계획이지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연구인력도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당히 부족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이 AI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다. 다만 각 부처들이 컨트롤타워도 없이 한달만에 뚝딱 정책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AI 열기가 식으면 함께 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준비가 덜 된 기업을 참여시킨 정책에 대한 실효성도 의문이다. ‘오랜기간 고민해서 장기간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에 급급하지 않으며 과정을 중요시하는 정부의 모습’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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