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2.22~1860.9.21)의 주저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년)다. 이 책에 담긴 그의 사상은 1)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2)인간은 맹목적인 의지 때문에 고통 받는다 3)욕구 충동 탐욕 대신 고통을 받아들이는 삶을 선택해야 근본적인 평화로움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1820년 베를린대학의 전임강사가 된 쇼펜하우어는 몇 번 자신 있게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열었지만 학생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는 강의를 방해한 적도 없는 헤겔을 ‘자기도 모르는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뻔뻔하고 멍청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헤겔이 콜레라로 죽고 1848년 시민혁명이 실패한 뒤 낙관론적 헤겔철학이 빛을 잃으면서 염세주의적인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영향이 가장 큰 분야는 철학보다 문학계라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토마스 하디의 ‘테스’ 등에 나온다. 톨스토이는 “나는 쇼펜하우어를 가장 천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자신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답변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강아지를 끌고 산책했다.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도 않았고, 불이 날까 봐 2층에서 자지도 않았다. 침대 옆에는 늘 권총이 놓여 있었다. 여자는 불행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나빠 행복을 모르고 자라났다. 자살로 추정되는 아버지의 죽음 후 성인이 되어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많은 유산을 받아내 평생 풍족하게 살았다. 사후에 그의 재산은 유언에 따라 자선단체에 기증됐다. 묘비에는 그의 바람대로 이름만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