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한 작품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여성 응모자의 경우 글의 첫 구절이 식구들 모두 집을 나간 시간 혼자 커피 한 잔을 타서 거실에 나와 창문을 열고 음악을 듣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작품 속 인물의 모습만이 아니라 실제 글쓴이의 모습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여겨지는 부분이다.
매일 아침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 바쁘게 남편과 아이들을 회사와 학교로 보낸 뒤 비로소 느긋해진 일상 속에 한 잔의 커피를 타 들고 거실로 나와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깊이와 무게를 달아보고, 또 그런 햇빛 한가운데 앉아 음악을 듣는 모습이 저절로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거실 탁자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모습들은 몇 작품 걸러 한 작품씩 나와도 아침 시간 책상에 앉아 무얼 하고 있는 얘기는 거의 없다. 책상 얘기는 오직 공부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와 사무실의 풍경을 이야기할 때뿐이다. 왜 집 안에 있는 책상 이야기는 하지 않을까. 혹시 집에 멋진 탁자는 있어도, 또 아이들 책상은 있어도 주부 자신의 책상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학교를 다닐 땐 누구나 자기 책상을 가지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그렇다. 결혼하기 바로 전까지도 학창시절에 쓰던 책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일단 먼저 쓰던 침대를 버림과 동시에 새 침대를 장만하고, 또 신혼살림으로 새 텔레비전과 새 냉장고, 새로운 식탁과 새로운 장롱, 새로운 소파까지 장만하면서 이상하게도 전에 쓰던 책상만은 있던 것도 버리고 결혼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쓰던 책상을 새 신혼살림집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사정도 충분히 알고 있다. 집이 좁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형편이 좋아져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더라도 새로운 가구와 보다 큰 가구로 끊임없이 살림을 바꾸어도 결혼할 때 버린 자신의 책상만은 끝까지 다시 장만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가정마다 컴퓨터와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망이 보급되어 가족 공동의 책상 하나가 새로 생겨난 셈이다. 주부들도 컴퓨터가 놓인 가족 공동의 책상이든 아니면 자신의 책상이든, 집에 있는 동안 점점 책상에 있는 시간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생활정보 대부분을 인터넷을 통해 얻는다. 놀이와 여가 시간 보내기도 컴퓨터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다. 집 안에만 있어도 예전보다 점점 책상에 앉을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예전에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통한 세상과의 접속을 위해 책상에 앉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집 안에 가장 많이 있는 사람이 주부이고 엄마인데, 집 안에 컴퓨터를 함께 쓰는 공동 책상 말고, 그냥 온전히 ‘엄마의 책상’ 하나 가지면 어떨까? 결혼하면서 버리고 온 내 책상을 지금이라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꼭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사람이어서만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라 하더라도 가족들로부터 독립적 영역으로 인정받는 ‘엄마의 책상’을 갖는 것, 올해 그런 꿈 하나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무실 책상이나 아이들 책상처럼 크지 않고 아주 작은 책상이라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