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들의 ‘등급장사’ 실체는 2년 전 동양사태로 밝혀졌다.
파산 위기에 놓인 기업에 대해 “투자해도 좋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면서, 뒤로는 돈을 챙긴 관행이 드러난 것이다. 동양사태가 터진 지 2년이 지났지만 신평사들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 동양사태에 연루됐던 국내 3대 신평사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동양사태, 신평사 ‘고무줄 평가’가 원인 = 동양사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신용등급을 매긴 신용평가사들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비롯됐다.
동양그룹은 2006년 계열사를 20개 넘게 늘리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회사채와 단기어음(CP) 발행에 손을 댔다. 이후 동양그룹은 기업 파산을 막고자 CP와 회사채를 돌려막았으나, 결국 4만여명이 넘는 투자자에게 1조원이 넘는 손해를 끼쳤다.
이 과정에서 동양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우호적으로 책정한 신평사들의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동양그룹 계열사였던 동양시멘트,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문제는 신평사들이 이들 업체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까지 투자적격등급을 매겼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양시멘트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한 달 전에 투기등급인 ‘B-’를 부여받았다. 투기등급은 ‘채무불이행’과는 달리 리스크를 안고 고수익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결국 기업이 파산되기 직전까지 신평사들이 내놓은 신용등급을 믿었던 투자자들만 잘못된 정보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됐다.
◇금감원, 올해 신평사 첫 제재… 그전까지는 ‘무풍지대’ = 금융감독원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징계 조치를 내렸다. 지난 1월 금감원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에 신용등급 불공정 부여를 이유로 기관 경고를 결정했다. 신평사들이 기업의 신용평가 계약을 따내기 위해 기업의 등급을 미리 좋은 등급으로 약속하는 등 불공정 거래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적발 내용을 살펴보면 한기평은 △신용평가조직의 영업행위 수행 △신용평가조직과 영업조직 간 정보교류 제한 위반 △신용평가 관련 재산상 이익수령 금지 위반 등이 적발됐다.
한신평은 △신용평가조직의 영업행위 수행 △신용등급 평가결과 부당 통보 및 공시 지연 등이 지적됐다.
나이스는 △평가시스템 등 전산자료 관리 미흡 △서면 계약체결 없이 신용등급 제공 등이 적발됐다. 이후 금감원은 이들 신평사의 대표이사를 문책경고 조치했다.
문제는 수십년간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투자 지침을 제공했던 신평사에 대한 검사, 제재가 동양사태란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실시됐다는 점이다.
신평사들에 대한 금감원의 관리·감독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금감원은 현재 신평사들에 업무보고자료, 공시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기적인 종합검사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등급이 2단계 이상 하락한(LRC) 업체는 30개(한신평 14개, 한기평 8개, 나이스 8개)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신용등급이 4단계(A+→BBB, 한신평)나 추락했다. 신용평가 등급을 매기면서 재무제표 등 근거 자료를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등급의 추락은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신평사 등급평가 절차…수수료 받으며 등급 매겨 = 신평사 3사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절차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이 신평사에 등급 평정을 의뢰하면 신평사는 예비분석에 나선다. 현장 답사, 경영진 면담 등을 통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신평사 각사에 조직돼 있는 평가위원회에서 등급을 결정한다. 이 과정이 수월하게 진행되면 결정된 등급은 해당 기업에 부여되고, 공시를 하게 된다. 만약 재심사가 필요할 경우 기업은 추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눈여겨볼 점은 수수료다. 각 사에서 책정하는 수수료 비율은 다르다. 신평사 입장에서는 기업이 지급하는 수수료가 ‘돈줄’인 셈이다.
한기평과 나이스는 총자산 규모에 따라 기본수수료를 정했다. 규모별로 보면 △1000억원 이하 1000만원 △1000억원 초과 5000억원 이하 1200만원 △5000억원 초과 1조원 이하 1500만원 등이다.
한신평은 자산 규모에 따라 수수료 비율을 적용한다. 5000만원 이하는 0.01bp, 1조원 이하는 0.09bp 등으로 계산한다.